​​​​​​​주변의 흔한 나무들에 내 삶을 투영시켜보며
알록달록 각각의 색깔을 가진 단풍의 아름다움
자신을 확인하며 돌아보는 시간이자 준비하는 시간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나뭇잎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나뭇잎

 

가족소통 가을여행

시나브로 올해도 두 달을 남겨 놓고 있다. 여느 해 마다 쓰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 기실 더 크게 다가왔던 한 해 인데, 처한 현실의 상황에서 나름의 해법이란 것이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생을 이어가는 주변의 흔한 나무들에 내 삶을 투영시켜, 의지를 다져보며 졸필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지난봄에 병마와 싸우던 아내가 하늘의 별이 되고, 어린 두 아이는 내게 남겨진 숙제이자 나의 보물들이 되었다. 나는 이 보물들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에 있다.

그런 중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세 번째의 문화수혜 행운을 얻었다. 지난 6월에는 경북 칠곡의 숲에서, 8월에는 전남 완도의 섬에서, 10월에는 강원 춘천의 숲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가족소통 프로그램으로 성장기의 아이들과 함께 시간 보내며 다양한 영감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2023년 8월 완도 청산도의 단풍나무 아래에서
2023년 8월 완도 청산도의 단풍나무 아래에서
2023년 10월 국립춘천숲체원에서 가족 미션프로그램
2023년 10월 국립춘천숲체원에서 가족 미션프로그램

 

물론, 나의 적극적인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 이윤의 사회적 환원 차원에서 진행되는 한 교육재단의 프로그램들은 감사하기 그지없다. 명분이 있는 참가의 형태라 더 좋다. 그 참가는 내게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게 하고, 또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동기유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음에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국립 춘천숲체원에서 단풍놀이하는 딸 보물
국립 춘천숲체원에서 단풍놀이하는 딸 보물
국립 춘천숲체원에서 단풍놀이하는 아들 보물
국립 춘천숲체원에서 단풍놀이하는 아들 보물

 

바쁜 중에 떠나는 춘천행은 아이들보다 오히려 내가 더 들떠 있었다. 지난여름에 홍천, 원주를 지나며 스쳐왔던 곳인데 지금껏 춘천에서 1박 이상 체류하며 보내는 여행은 스무 살 무전여행 때와 수 년 전의 업무 출장에 이어 세 번째로, 그 구체적 행선지도 자연이 가득한 곳이었기에 좋았다. 그렇기에 아이들과 더 분주하게 계절을 만끽하고 돌아온 봄내(春川)에서의 가족소통 가을여행이었다.

2023년 10월 국립춘천숲체원에서 가족소통 윷놀이
2023년 10월 국립춘천숲체원에서 가족소통 윷놀이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
2023년 10월 국립춘천숲체원에서 아침 계곡산책
춘천야경 탐색
춘천야경 탐색
2023년 10월 국립춘천숲체원에서 아침 계곡산책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가로수와 먼 산의 풍경들에 눈길이 가는데, 점점 올라갈수록 알록달록한 색깔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이들도 자연과 교감하며 배우는 무언가가 있었겠지만 나도 새로운 내용을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었는데, 특히 복자기나무와 계수나무의 단풍 든 색깔과 모양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며 내년 봄에는 이 나무들을 심어 가꾸어 보겠다는 계획도 해보게 되었다.

타지로 나설 때면 IC를 통해 고속도로 진입하면서 정면에서 배웅해주는 존재는 천성산이다. 멀리 타지로 나갔다가 돌아올 때도 천성산의 온화한 모습에 나는 안도감을 느낀다. 인자함으로, 사랑으로 보살펴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천성산의 모습으로 남아 보살펴주고 있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한결같은 마음의 안식처 천성산도 어느새 초록의 모습에서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중앙고속도로 상행선의 가을풍경
중앙고속도로 상행선의 가을풍경
마음의 안식처 천성산도 물들어가는 중
마음의 안식처 천성산도 물들어가는 중

 

 

나의 색깔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유독 시각이 발달되었다 해야 할까, 시각 의존도가 높다 해야 할까 다른 감각기관들에 비해 가시적인 현상들에 더 쏠리는 것 같다. 봄에 피어나는 꽃들에 열광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것은 어쩌면 나무에게 있어서는 큰 환영이자 축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생명활동을 잠시 멈추기 위해 잎을 떨어내기 전 마지막 자신의 신호를 보내는 가을 단풍의 모습에도 사람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대기에 분주하다.

춘천 제이드가든에서 사진 찍기에 분주한 사람들
춘천 제이드가든에서 사진 찍기에 분주한 사람들
춘천 제이드가든의 가을
춘천 제이드가든의 가을

 

일반적으로 단풍은 나무의 잎이 물든 상태를 말하지만, 개념적으로는 단풍나무과의 잎이 물든 상태(변하는 상태)를 말한다. 잎을 떨어뜨리기 전, 줄기로부터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던 잎은 잎자루 밑 이음새 부분에 떨켜를 만들면서 공급을 차단시킨다. 이것은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이듬해 봄을 위한 나무의 선택적 생존전략이다. 이때 클로로필(chlorophyll)이라는 엽록소가 파괴되어 잎 속의 물질들이 다른 색소로 바뀌면서 나타나는 것으로 날씨가 맑고 공기 중에 물기가 적으며 싸늘해질 때 쯤 단풍 들기 시작하고 햇빛이 많을 때 더 활발히 물든다 한다.

잎의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붉은 잎으로 변하는 단풍나무
잎의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붉은 잎으로 변하는 단풍나무
잎의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다홍 잎으로 변하는 복자기나무
잎의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다홍 잎으로 변하는 복자기나무

 

단풍(丹楓)은 꼭 붉은색으로만 물드는 게 아닐텐데 왜 붉다는 의미의 ()’을 썼을까? 몇 몇 수종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붉게 보이기 때문에 ()’이나 ()’, ‘()’보다는 옅은 색인 ()’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온 산에 붉은 단풍이 가득하다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은 붉은 ()’을 써서 울긋불긋한 나무들이 모여 집단을 이룬 가을 산을 표현한 대표적 한자성어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은 글자처럼 바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람 찬 계절에 절정을 이루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그 열매(씨앗)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번식을 하는 까닭 때문이기도 하겠다. 어찌됐든 식물학자들이 나무의 이름에 단풍을 붙인 이유는 가을의 물든 단풍나무가 가장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단풍나뭇잎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단풍나뭇잎
바람타고 날아가도록 디자인된 단풍나무 씨앗
바람타고 날아가도록 디자인된 단풍나무 씨앗

 

나뭇잎은 햇빛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초록 색소 뿐 아니라 여러 색소를 가지며 각각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하고 에너지를 엽록소에 보낸다.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 많은 단풍나무, 산벚나무, 화살나무, 붉나무, 옻나무, 산딸나무는 붉은색으로, 크산토필(xanthophyll)이 많은 복자기나무, 느릅나무, 포플러, 플라타너스는 주황색으로, 카로티노이드(carotinoid)가 많은 은행나무, 고로쇠나무, 계수나무, 이나무는 노란색으로, 타닌(tannin)이 많은 느티나무나 칠엽수는 갈색으로 변한다 한다.

상수리나무 외의 참나무 중 갈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은 이 들어가는데 예전에 신발 밑에 깔거나 떡을 쌀 때 까는 의미도 있지만, 갈색으로 변한다거나 색을 갈아입는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갈색으로 변하는 것은 타닌이 많은 이유 때문이겠다.

이렇듯, 나뭇잎 색깔은 비슷한 듯 보여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대강 보면 붉은색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단풍잎을 보고 아름답다 하는 이유는 잎마다 알록달록 각각의 색깔을 갖고 있기 때문이겠다. 사람도 제각각의 색이 있어 아름다울 것이다. 나의 색깔을 무엇일까?

왼쪽부터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단풍나뭇잎, 붉은색으로 변해 떨어진 화살나뭇잎
왼쪽부터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단풍나뭇잎, 붉은색으로 변해 떨어진 화살나뭇잎
왼쪽부터 붉고 노랗게 물들어 떨어진 느티나뭇잎,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뭇잎
왼쪽부터 붉고 노랗게 물들어 떨어진 느티나뭇잎,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뭇잎
왼쪽부터 노랗게 물들어가는 이나뭇잎, 갈색으로 물들어 떨어진 졸참나뭇잎
왼쪽부터 노랗게 물들어가는 이나뭇잎, 갈색으로 물들어 떨어진 졸참나뭇잎
왼쪽부터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칠엽수(마로니에) 잎,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떡갈나뭇잎
왼쪽부터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칠엽수(마로니에) 잎,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떡갈나뭇잎

 

내 삶을 물들여가기 위해

흐르는 생명을 거스르지 않는 나무의 변화는 순간순간이 모두 아름답다. 봄에는 꽃 피고, 여름에는 열매를 맺고, 가을에는 익고, 단풍 들어 여러 빛깔로 옷을 갈아입는. 소리 없이 부지런한 나무의 변화는 그래서 아름답다. 자신을 열어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는 그래서 감사하다.

수 년 전에 천성산을 다녀오며 냇가 옆 울창한 어미나무 아래로 자라난 앙증맞은 새끼나무를 데리고 와서 연구소 앞에 심었다. 여린 다섯 손가락의 펼침 마냥, 초록빛 별 마냥 그 푸릇푸릇한 연둣빛깔이 너무 좋아 단풍나무라 생각했는데 자라면서 고로쇠나무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단풍나무를 비롯해 중국단풍, 홍단풍, 은단풍, 설탕단풍(캐나다), 공작단풍(수양단풍), 고로쇠나무, 시닥나무, 신나무, 복자기나무들이 날개 달린 씨앗을 가진 단풍나무 형제들(단풍나무과)임을 알았다.

고로쇠나무는 20M 가까이 자라는 큰키나무인데 연구소 창을 가릴까봐 계속 가지치기를 해서 성장을 억제시켜오던 나는 지난해 이 무렵 연구소 뒤편의 햇살 좋은 곳으로 옮겨 심었다. 깊이 뻗어 내린 뿌리를 무리해서 잘라가며 옮겼던지라 혹여나 죽을까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자리를 잡았는지 새잎 돋아내며 꽃을 피우고, 단풍 들어 그 생을 이어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2022년 11월의 고로쇠나무 이식작업
2022년 11월의 고로쇠나무 이식작업
2022년 11월의 고로쇠나무 이식작업
2022년 11월의 고로쇠나무 이식작업
2023년 4월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 고로쇠나무
2023년 4월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 고로쇠나무
2023년 4월 여린 잎이 돋아나고 있는 고로쇠나무
2023년 4월 여린 잎이 돋아나고 있는 고로쇠나무

 

수액에 칼슘과 미네랄 성분이 많아 성장기 어린이나 여성, 노인이 마시면 좋고, 신경통, 위장병, 고혈압, 이뇨작용에도 좋다고 알려진 고로쇠나무의 수액은 뼈에 이로운 물이란 이름의 골리수(骨利水)나무로 불리며 해마다 이른 봄이 되면 몸에 구멍이 뚫려 수액 채취를 당하며 괴로운 나무가 되고 있다. 그래도 우직하게 자신을 내어준다.

2023년 5월 이식한 고로쇠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푸르게 성장 중
2023년 5월 이식한 고로쇠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푸르게 성장 중
2023년 10월 잘 성장해가고 있는 고로쇠나무
2023년 10월 잘 성장해가고 있는 고로쇠나무

 

몇 해 전, 저수지 옆 밭가의 모과나무 아래로 어린 홍단풍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자라났을까? 100M 떨어진 곳에 어미나무 10여 그루가 있는데 그곳에서 씨앗이 바람에 실려 날아와 자생한 것이었다. 이 역시 옮겨와 연구소 뒤편의 햇살 좋은 곳에서 고로쇠나무와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

홍단풍(노무라단풍)나무는 일본에서 들여온 나무로 내내 붉은 잎을 유지하는 단풍나무인데 올해의 모습은 가을의 붉음 보다 오히려 봄의 붉음이 더 좋은 것 같다. 바람에 자기 몸을 실어온 단풍의 씨앗(열매)처럼 식물들의 씨앗은 저마다의 목적에 맞게 몸을 디자인한다. 자기의 삶도 스스로 디자인 할 수 있어야 함을 나무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2021년 4월 어린 홍단풍나무 이식
2021년 4월 어린 홍단풍나무 이식
2023년 10월 잘 성장해가고 있는 홍단풍나무
2023년 10월 잘 성장해가고 있는 홍단풍나무
2023년 4월의 홍단풍나무
2023년 4월의 홍단풍나무
2023년 10월의 홍단풍나무
2023년 10월의 홍단풍나무

 

계수나무는 잎이 하트 모양으로 노랗게 물들면서 달콤한 솜사탕 향기를 내뿜어 시각 뿐 아니라 후각까지 자극한다. 복자기나무의 잎 모양은 다른 단풍나무와 달리 세 개의 작은 잎이 달려있고 가장자리에 몇 개의 커다란 톱니가 있다. 주홍빛의 찬란함은 눈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의 느낌을 선사해준다. 그리고 그 잎을 미련 없이 떨어뜨리며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제 역할을 다 마친 것 같은 낙엽이지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그의 당당한 삶의 방식이다.

노랗게 물든 계수나뭇잎
노랗게 물든 계수나뭇잎
계수나무 수피
계수나무 수피
다홍빛으로 물든 복자기나뭇잎
다홍빛으로 물든 복자기나뭇잎
8월의 복자기나무 열매
8월의 복자기나무 열매

 

가을에 단풍이 드는 것은 낙엽되기 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돌아보는 시간이다. 어떤 색깔과 모양으로 살아왔는지 자기검열의 시간인 것이다. 시련의 겨울을 이겨내고 새로운 모습의 봄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따뜻한 햇살과 찬바람을 번갈아 쐬며 곱게 물들어가는 가을 단풍을 바라보며 내 삶을 알차게 물들여가기 위해 숙고하고, 움직여야겠다. 내 보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칠엽수(마로니에) 잎
노랗게 물들어가는 칠엽수(마로니에) 잎
춘천 제이드가든에서 물들어가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춘천 제이드가든에서 물들어가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전이섭 문화교육연구소소장

로컬크리에이터, 양산시 산림조합 대의원, 양산시 제3기 주민참여예산 부위원장, 양산시 시민통합위원회 문화자치위원,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문화매력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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