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널리 퍼져있는 고분군북정리 고분군 맨 앞자락 10호분이 부부총이다일제가 역사 합리화 위해 파헤치고 유물 가져갔지만위대했던 삽량주 시절의 영화와 사연은 길이 남았다흔히 로맨스라고 하면 가슴 한켠에 꼬깃꼬깃 숨겨둔 첫사랑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란 생과 사의 경계도 없는 생멸인연(生滅因緣)의 심체(心體)다. 지금 혹은 오늘이라고 할 때 과거는 시공(時空)을 정지시킨다. 영원이라는 존재는 이 정지된 시공을 헤집고 들어와 어떤 물상으로 현현하는 것이다.죽어서도 내세를 약속하듯 영혼이 함께 묻힌 '양산 부부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9.11 10:50
-
32. 백제 무령왕(下)왕릉으로 가는 길은 무더운 대기로 가득했다. 간간히 매미소리가 구름을 비집고 햇살처럼 쏟아졌다. 무령왕이 잠들어 있는 송산리 고분군은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박물관 주차장에서 차로 5분 거리. 고분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백제가 한성을 고구려에 빼앗기고 남하해 웅진시대를 열었던 시기의 왕릉급 무덤들이다. 모두 7기가 관리되고 있었는데 무령왕의 무덤은 두 번째 무덤이었다. 왕이나 왕족들의 무덤이라 하지만 주인이 밝혀진 것은 무령왕릉이 유일하다. 무령왕릉은 아치형의 현실을 잘 구운 벽돌을 쌓아 만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9.04 11:18
-
웅진시대 백제 왕릉군이었던 송산리 고분군에서 우연히 발견일제강점기 발굴된 5,6호기 사이 1천5백년을 기다렸던 벽돌 들자삼국시대 왕릉 중 유일하게 지석을 통해 무령왕 신원 확인돼잠자던 무덤은 간혹 우리에게 수수께끼의 열쇠를 쥐어 준다. 그리고 그 문을 열었을 때 의문의 수수께끼들은 곧 역사가 된다. 공주 무령왕릉이 그 한 예다.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대진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 남짓, 공주박물관에 도착했다. 계속되는 장맛비와 옷깃에 스며드는 눅눅한 날씨. 그래도 잔잔한 바람을 타고 가만히 내리는 빗속의 박물관 풍경이 정겹다. 키 작은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8.28 14:47
-
비단결 같이 곱게만 흐르던 백마강은 오랜 장마와 폭우로 붉은 흙탕물이다. 7백년 찬란했던 백제가 여름날 산수국처럼 서럽게 져버린 그날의 강물도 성난 황톳물이었다.660년 7월 12일, 하늘의 달도 숨어버린 칠흑 같은 밤. 태평성대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사비성은 나당연합군의 말발굽에 무참하게 짓밟혔다. 아비규환의 불길 속에서 궁성의 시녀와 궁녀들은 "적에게 잡혀 치욕의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며 백마강 물결위에 점점이 꽃잎처럼 떠내려갔다. ▶ 나당연합군의 협공 사비성 함락 3일전, 황산벌전투에서 승리한 신라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8.24 10:47
-
서동요 로맨스의 주인공 무왕아들 의자왕 40대에 왕위 올라620만명의 백성 거느린 군주안정된 국력 바탕으로 신라에 도전대야성 싸움 승리에 도취돼끊임없는 성 따먹기 자멸로성충, 흥수, 계백, 윤충 등충신 명장도 방탕 군주 못이겨부왕 무령왕(武寧王)의 뜻을 따라 사비로 천도를 옮긴 성왕(聖王)은 고구려 신라와 어깨를 겨누며 중국 일본까지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왕이었다. 성왕은 천도 이후 왕권 강화와 백제 중흥에 전력을 기울였다. 중앙의 관등제와 불교 교단 정비 등 개혁정치를 펼쳤다. 551년에는 신라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해 한성(漢城)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8.14 10:56
-
산을 오른 지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1천5백년 전 아라가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름기운이 완연했다. 가파른 코스의 나무계단과 완만한 맨살의 흙길, 그리고 잘 다듬어진 잔디밭, 연인 또는 아이들과 손잡고 걷기 좋은 환상적인 산책코스다.10호분부터 13호분까지는 봉분자체가 또 하나의 산봉우리 같은 '산위의 산'이라 할 정도의 대형 분으로 왕이나 왕족 또는 수장급의 릉으로 추정되는 무덤들이다. 특히 13호분은 말이산고분군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덤으로 고분군 중앙 최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아라가야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처음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7.22 11:12
-
아득한 옛날 이 땅에 불꽃처럼 타 올랐다 불꽃처럼 사라진 아름다운 제국이 있었다. 바로 지금의 함안읍을 중심으로 웅지를 틀었던 아라가야 이야기다. '아라가야' 이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고대의 제국이 또 있었던가. 아리랑의 숨결처럼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1천5백년 시공을 넘어 아라가야를 찾아가는 산하는 푸르름이 짙게 내려앉은 소서(小暑)의 계절. 노포동 금정톨게이트에서 새로 난 기장-진영 간 고속도를 타고 진영휴게소에서 잠간 쉬어가도 함안박물관 까지는 2시간 남짓 거리. 전설 속 불의 제국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내비게이션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7.15 11:41
-
여름의 밤하늘도 가을하늘만큼이나 높다는 것을 별을 보면 안다. 한 떼의 먹구름이 소나기를 몰고 다니며 하늘을 깨끗이 쓸어 놓은 그런 날 밤엔 더욱 그렇다. 일찍 저녁을 먹고 마당귀에 나앉아 하루를 식힌다, 구름이 짓누르던 한낮의 하늘은 간데없고 초롱초롱한 밤하늘엔 보석을 뿌려놓은 듯 별들이 가득하다. 은하수가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 건너 멀리 또는 가까이서 깜박이는 별들의 바다, 성좌의 길 아득하다. 머언 전설을 따라 여름밤은 깊어간다. 은하수는 여름의 강이다. 사계 중에서 여름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은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7.08 10:57
-
고령의 반파국(伴跛國)은 전화(戰禍)의 소용돌이에서 한 발 비켜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후진국이었다. 그런데 해안지역의 세력들이 전란을 피해 낙동강을 거슬러 모여들면서 반파국은 새로운 맹주국으로 부상했다. 이를 후기 가야연맹 혹은 대가야연맹이라 한다. 후기 가야연맹 즉 대가야는 반파국을 중심으로 보다 강력한 집단체제를 형성했다. 5세기 후반부터는 중국 남조의 제(齊)에 사신을 보내는 등 삼국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백제, 신라와 함께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기도 하고 백제, 왜와 더불어 신라에 대항하기도 했다. 6세기 초에는 백제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7.01 11:57
-
꽃은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고 또 한번의 봄이 아물지 않는 생채기를 남기며 지나가고 있다. 우주의 만물이 시시각각 나고 죽는 염념생멸(念念生滅)의 계절, 봄이 그렇게 지고 있다. 우기를 알리는 비가 2~3일 내린 뒤의 하늘은 잘 쓸어놓은 절간의 마당처럼 깨끗하다. 언젠가는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던 여인들의 왕국, 미지의 세계로 가는 한산한 국도변엔 벌써 여름이 내려앉고 있다. 순을 틔운 나뭇잎에 꽂히는 햇살이 눈부시다. 조금은 이른 더위, 차도 고속도로도 숨이 가쁘다. 남해고속도로를 따라가다 칠서 IC에서 구마고속도로로 선회했다. 차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6.24 15:12
-
▶ 가야에서 성행한 순장제도고고학적으로 볼 때 고대 한반도에서 순장이 가장 처음 출현한 곳은 가야(금관가야) 무덤이다. 가장 마지막 시행된 곳 역시 가야 (대가야)다. 가야의 순장행위는 3세기 말부터 6세기 중엽까지 2백50년간 지속되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가야의 경우 순장자의 수가 무려 40명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였다. '부여 (夫餘)는 사람을 죽여 백 명이나 되는 순장을 하였다 (殺人殉葬 多者百數)' . 그러나 아직 발굴된 예는 없다. '고구려에서는 248년, 왕(동천왕)이 죽자 새 왕(중천왕)의 만류에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6.17 12:02
-
불(火)의 땅 비사벌. 입술이라도 데일 것 같은 화왕산 철쭉꽃이 화들짝 피었다 지고 난 뒤의 비사벌, 창녕은 뜨거웠다. 신라시대의 비자화군(比自火郡), 삼국시대의 서화현(西火縣), 삼국통일후의 화왕군(火王郡), 여기다 불뫼산이라 불리는 화왕산(火旺山)과 불의 입김처럼 치솟는 부곡온천, 그 지명들이 모두 뜨겁다. 이 불의 땅에 천5백 년 전 불꽃처럼 살다가 불꽃처럼 사라진 전설의 사람들이 있었다. 비밀의 왕국 비화가야 사람들. 봄이면 철쭉꽃이 혼절하듯 피고 지고 가을이면 은빛 억새가 점령군의 깃발처럼 나부끼는 화왕산, 그 곳엔 난공불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6.10 12:02
-
혼돈의 시대 그 비밀의 문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낙동강 큰애기가 봄바람에 치마폭을 날리며 나타날 것만 같은 낙동대교를 건너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을 찾았다. 가야의 거리 해반천을 따라 제철인 듯 흐드러지게 핀 금잔화가 멀미나도록 눈부시다. 수로왕릉-수로왕비릉-봉황동 유적-구지봉 등 고적(古蹟)냄새가 물씬 나는 문화의 거리가 정갈하게 잘 정비돼 있다. 박물관 뒤편 대성동 고분군도 비록 봉분은 없지만 아담한 동산으로 잘 가꿔져 있다. 33년 전 이곳을 처음 찾아 왔던 그 날렵하던 발길에 어느새 세월의 무게가 이렇게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6.03 10:20
-
산야는 어느새 짙은 록빛으로 물들었다. 한 바탕 소란을 피우던 원동(양산)의 꽃바람이 경부선 열차처럼 북상한 뒤의 강물도. 유례없는 역병 코로나의 사슬에서 벗어나 여름으로 가는 길목의 강바람이 싱그럽다. 한반도 남부의 젖줄 낙동강엔 유구한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길고 오랜 역사가 흐른다. 그리고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역사는 끊임없이 흐르고 또 흘러 갈 것이다. 비옥한 낙동강 유역은 상고시대(上古時代) 부터 근세에 이르기 까지 뺏고 빼앗기는 세력들의 각축장이었다. 삼한시대에는 낙랑과 대방군의 금속문물이 강을 따라 흘러들었고 진한(辰韓)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5.27 13:57
-
숲속의 성채는 한 낮의 태양 아래 눈 부셨다. 굳이 성주의 초대는 없었으나 마음이 먼저 성큼 성안으로 들어섰다. 잘 정비된 동래읍성, 마지막 함락의 오욕에 저항하며 초개같이 목숨을 던진 아비규환의 그림자가 초여름 나뭇잎처럼 나풀거린다. 동래읍성 성곽을 울타리 삼아 서남쪽 도심을 바라보고 우뚝 서 있는 복천박물관. 석조건축의 견고한 이미지가 오랜 전장에 나간 부재의 성주를 기다리는 고고의 요새처럼 보였다.복천동 고분군은 박물관 건물과 구름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쪽 마안산 구릉에 반달모양으로 분포돼 있었다. 인류는 삶을 영위하면서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5.20 17:46
-
그리도 바다를 못 잊어서만은 아니다 / 작살 하나 들고 바다로 나가 / 아이를 낳고 젖을 물렸을 뿐이다 / 물살에 흔들리며 일가를 이루고 / 물빛에 그렇게 스며들었을 뿐이다 // 왜 그립지 않겠는가 / 무딘 화살촉으로 사냥을 하고 / 춤추고 노래하며 들썩이던 숲과 들 / 저 반구대 바위 속 걸어 들어가 / 슬픈 울음으로 박혀 / 겁劫의 세월 / 그렇게 경배 받고 싶지 않겠는가 // 누가 나를 쪼아 / 저 단단한 바위에 금빛으로 새겨다오 / 바람도 구름도 읽고 가는 / 마르지 않는 경전으로. 김백반구대암각화를 처음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5.13 11:28
-
선사(先史)의 마을로 가는 길은 가히 몽환적이었다. 산하(山河)는 온통 연녹색 물감을 쏟아 부어놓은 듯 투명한 햇살에 비친 여린 잎들이 시리도록 맑고 눈부셨다. 더 이상의 문명을 거부하는 입구에 차를 세우고 수초와 물버들이 우거진 나무다리를 건넜다. 원시로 가려면 먼저 몸과 마음을 씻는 의식이라도 치러야 한다는 듯 솔숲을 지나고 짙은 대숲을 거쳐야 했다. 마치 잘 그려진 한 폭 풍경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환상에 빠졌다. 언젠가 한 번쯤 와 본 듯한 데쟈뷰.하늘에도 깊고 좁은 골짜기가 있었다. 그녀와 나는 흰 조각구름을 타고 낯설지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4.28 18:01
-
경주 감포 봉길해수욕장, 그 많던 사람들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파도에 쓸리는 자갈소리만 해조음처럼 뒤척인다. 동해안을 여행하다 보면 주상절리 크고 작은 바위섬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왕암도 그중 하나, 신라 30대 문무대왕 수중릉이다. 동해의 푸른 물결에 산골뼈를 뿌렸으니 무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이곳이 문무왕의 수중릉이었을 것으로 추정, '문무대왕수중릉'이라고 세워놓은 표지석이 전설을 말해주고 있을 뿐. 대왕암은 뭍에서 불과 2백여 미터, 헤엄쳐 건너도 금방 닿을 수 있는 지근거리다.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4.22 10:04
-
토함산에 올랐어라 해를 안고 앉았어라 가슴속에 품었어라 세월도 아픔도 품어 버렸어라 터져 부서질 듯 미소 짓는 님의 얼굴에도 천년의 풍파세월 담겼어라 토함산 석굴암에 올랐다. 동해의 붉은 해가 새벽처럼 달려 와 부처님 옷섶에 내려앉는 땅, 사철 안개와 구름을 토한다는 토함산의 4월은 더없이 안온하다.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에서 석굴까지의 숲길은 세속의 욕심으로 포장되지 않은 맨살의 흙길. 감포 앞 바다에서 대종천 골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소리 물소리에 마음을 씻으며 신발 벗어 들고 느린 걸음으로 걸으면 더욱 좋을 그런 길이다.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4.14 17:51
-
산빛 고운 날 불국사엘 갔다. 보수 끝난 다보탑을 보기 위해. 상춘객들의 발길에서 봄꽃들이 피어난다. 피안의 구품연지못엔 벌써 백련이 여린 잎을 띄우고. 활짝 핀 벚꽃 위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백운교를 지나 33천(天) 화엄의 세계로 들어섰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생과 사와 만남과 이별의 근원 또한 하나일지니. 불이문 지나는 사람들 머리 숙여 합장한다. 바로 여기가 수미산 불국(佛國)인가. 흘러가는 구름이라도 잡으려는 듯 다보탑이 하늘 가운데 우뚝 서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저 욕심 없는 10원짜리 동전 속 다
김백 시인의 문화기행
김백 시인
2020.04.08 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