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창조적 흔적이다. 눈이 오는 날 사람이나 짐승이 지나가면 발자국이 남는다. 우리는 발자국을 보고 누가, 언제,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발자국을 통해 정보를 얻고 느낌을 가진다. 그 발자국이 연인의 발자국이면 이내 연인의 모습이나 추억이 재생된다. 그리고 뭉클하고 울컥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때마침 기억 속에 눈이 오고 그 발자국이 오랜 추억이 된다. 그리하여 한편의 시와 음악 그리고 그림으로 형상화되어 새롭게 창조된다.

그러나 모든 발자국이 다 추억이 되고 예술 작품의 모티브가 되어 작품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발자국은 자연 발생적이지만 발자국을 소재로 그린 그림은 기교와 혼을 불어넣어서 만든 작가의 흔적이다. 그 속에는 작가의 원근과 명암, 선과 면, 작가만의 독특한 색깔, 작가의 리듬, 하모니, 셈여림, 음정과 박자가 녹아 있다. 또 작가 특유의 비유와 상징이 있다. 그런 장치들이 작가의 혼을 대체하고 신의 음성을 불러들인다. 그 속에 작가는 없어도 독자와 관객은 스폰지처럼 작가를 빨아들인다. 지금 바로 여기서 작가를 만나 작가만의 동굴을 여행하게 된다. 색과 음, 동작과 언어를 음미해 가며 작가의 바다를 건너게 된다.

자연은 신의 흔적이고 예술은 작가의 흔적이다. 우리는 작가의 흔적으로 작가를 만나고 신의 흔적으로 신을 만난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작가가 창작할 당시의 짜릿하고 황홀한 느낌을 흡수하게 된다. 마치 천지창조를 연주할 때와 같은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감동을 주는, 예정된 천재로 불리는, 창조적 예술가는 소수에 불가하다. 게다가 작가의 격이 높아지면 작가의 농담이나 몸짓 심지어 낙서까지도 불후의 명작이 된다.

작가는 대중보다 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대중의 박수에 결코 속아서는 안 된다. 어느 시대이든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창조적 소수가 있다. 창조적 소수가 남긴 흔적은 반드시 창조적 흔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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