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산서 茶 생산·공납 했다"

국내 손꼽히는 차문화학 연구자 박영식 교수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 차 생산 기록 확인

2019-10-01     전용창 기자

조선시대에 양산에서 차를 생산했다는 기록이 본지에 전달됐다.

본지 27일자 '다방마을 야생 차나무 대량 서식' 제하의 기사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차문화학 연구가인 박영식 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 교수가 본지에 관련 자료를 보내왔다.

박 교수는 1일 자료에서 "'조선시대 차나무 공납지가 여럿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양산의 공납물품에 차나무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는 보도는 정확하지 않다"며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고사촬요(1674), 대동지지(1864), 여재촬요(1894) 등 세종실록지리지 이후에 편찬된 조선시대 전국 자리지에는 양산에 차가 생산되는 것으로 기록 되어 있고 이미 잘 알려진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1460년 이전 작성 추정)에도 양산에 차를 생산하는 동을산 다촌이 있었고 북쪽 거화군 경계에 평교다촌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현전하는 관련 전거가 아직 미발굴 된 것이 많아 단정적인 결론을 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으나 여러 근거 자료를 통해서 연구된 바에 의하면 조선초기 전국 지리지에 그 지역의 물산이나, 토산으로 물종이 기록된 곳에서 해당 물자를 주로 관비생산(官備生産)으로 생산해 절차에 따라 공납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따라서 조선시대에 양산지역에 차가 생산되지 않았다던가, 차를 공납한 사실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