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74>

1935년 12월 이스탄불을 출발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일등석은 예년과는 달리 모두 차서 빈 칸이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유난히 깔끔을 떠는 벨기에 탑정 엘큐르 포와로는 속히 런던으로 돌아가야 할 사정이 있는데, 열차회사 중역인 친구 비앙키의 도움으로 출발 직전에야 일등석에 오를 수 있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일등석 승객들은 포와로의 동승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내색이다. 그들 중 최소한 한 사람은 걱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데 나중에 몇 번 살해 위협을 받았다며 출발 전에 포와로에게 보호를 요청했던 한 승객이 여러 번 흉기에 찔린 시체로 자신의 객실에서 발견된다. 희생자가 발견된 바로 그 때에 열차는 유고슬라비아 인근에서 폭설 때문에 멈추게 되고 출발은 지연된다. 경찰을 부르기는 어렵고 열차회사의 요청으로 살인자를 찾아내는 일은 이제 포와로에게 맡겨졌다. 그는 자기 방식대로 수사를 진행해 나가는데... 그의 스타일은 이미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리는 아가사 크리스티에 의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원작소설은 1932년에 일어난 유명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와 앤 모로의 아들에 대한 악명 높은 유괴 살인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찰스 린드버그는 영화가 개봉되기 석 달 전에 죽었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셜록 홈즈를 창조해 낸 코난 도일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다. 그녀가 쓴 작품 대부분은 영화나 TV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소설 속 주인공인 포와로 탐정과 미스 마플은 1세기가 넘도록 여전히 사람들의 뇌리에 인상깊게 남아 있다. 포와로가 죽음을 맞는 마지막 작품인 "The Curtain" 발표 후 영국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가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크리스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쥐덫(Mouse Trap)"은 희곡으로 개작되어 1952년 이후로 지금까지 전용 극장에서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영국 런던의 세인트 마틴 극장이 바로 그곳으로, 영국을 찾는 관광객에게 필수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 명탐정 포와로의 활약

포와로 탐정이 사건경위를 설명하는 마지막 장면
포와로 탐정이 사건경위를 설명하는 마지막 장면

필자는 1970년대 후반에 며칠 동안 병고로 누워있어야 했기에 읽을거리를 위해 서점을 찾았다가 우연히 고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Ten Little Indians)"라는 소설을 읽고 아가사 크리스티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책에 흠뻑 빠져버린 나는 큰 책방을 찾아 아가사의 소설을 찾기 시작했고 놀랄 만큼 많은 책들이 세상에 나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가사 크리스티 순례는 50권에 달하는 문고판을 모조리 섭렵한 후에야 끝이 났다. 크리스티 원작 소설들이 대부분 영화나 TV드라마로 제작되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TV에서 간혹 보여주는 특집 영화에서 또다시 만난 그녀의 작품들은, 뻔히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너무 흥미로워 보고 또 보곤 했다.

포와로 탐정 역은 대개 TV에서는 데이빗 수쳇이 맡았고 영화에서는 알버트 피니와 피터 유스티노프가 명연기를 선보였는데, 피터 유스티노프가 <백주의 악마>, <3막의 비극>, <나일살인사건> 등에서 독창적인 매력을 뽐냈다면, 이 영화에서만큼은 알버트 피니가 30분 가까이 용의자들을 밀어붙이는 숨막히는 연기를 통해 멋진 연기를 선보였다.

당시 37세의 알버트 피니는 포와로 역에 대한 세 번째 선택이었다. 처음 제안한 알렉 기네스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폴 스코필드도 마찬가지였다. 피니에게는 55~60세의 사랑받는, 그러나 다소 괴팍한 벨기에 탐정 외모를 위해 특수 분장이 제공되었다.

▶ 대배우들의 앙상블

오스카상을 받은 잉그리드 버그만(왼쪽)
오스카상을 받은 잉그리드 버그만(왼쪽)

알버트 피니가 같은 시기에 연극에 출연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촬영에 들어가기 앞서 분장에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그는 잠잘 시간이 거의 없었다. 똑같은 일상이 계속되자, 잠들어 있는 그를 모셔오기 위해 그의 집으로 응급차가 오곤 했다.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면서. 촬영장으로 오는 30분 동안, 분장사들이 그의 얼굴에 힘든 작업을 시작하곤 했다. 마무리는 아직 자고 있는 피니가 스튜디오에 도착하고 난 뒤에 이루어졌다. 

시드니 루멧 감독은 내용상 이름난 스타들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자신과 이전에 세 편의 영화를 찍은 숀 코네리와 먼저 계약을 맺었다. 이후 제작자들은 캐스팅 감독의 배역 추천에 대부분 동의했지만, 공주 역에 마를리느 디트리히의 선택은 꺼렸다. 너무 가식적이라 믿어졌기에. 결국 웬디 힐러로 교체되었다. 압권인 잉그리드 버그만의 오스카 수상 연기는 사실 한 장면에 담겨있다. 그것은 포와로 탐정 앞에서 신문당하는 장면인데, 거의 5분 가까이 되는 긴 하나의 테이크로 촬영됐다.

무려 27분 이상 걸린 포와로가 사건 해결을 설명하는 마지막 장면은 좁은 셋트 위에서 싱글 샷으로 잡힐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샷과 카메라 앵글이 필요했다. 연기자들은 여러 번씩 찍어야 했다. 그런 작은 공간에서는 많은 카메라가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피니에게는 특별히 고역이었다. 그의 독백은 장장 8페이지 길이였기 때문이다.

2017년에 영국 정통파 배우이자 감독인 케네스 브레너가 호화 캐스팅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 나왔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에 훨씬 못 미친다. 분장과 배경, 셋트 등 표현 기술은 발달되었지만 이야기의 짜임새나 배우들의 앙상블은 45년 전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더욱 빛난다. 

이 영화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면 <나일살인사건, 1978>을 찾아서 관람해 볼 것을 추천한다. 이 영화가 복수의 용의자에 의해 저질러진 예상 못한 반전이 있었다면 <나일살인사건>은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깨는 포와로의 빛나는 추리가 압권이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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