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이 통합한 미래통합당의 공천관리위원회 면접심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신문을 장식했다. 황교안 대표, 홍준표 전 대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의 긴장된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홍 전 대표였다. 분홍색 넥타이를 가지런히 매고 면접장에 들어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장면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홍준표가 누구인가. 한때 원내 제 1당을 지휘하며 대선 후보에까지 올랐고, 두 차례의 경남도지사 시절 여론에 굴복하지 않고 나름 소신있는 정책을 펼치며 진보진영과 대립각을 세웠던 그 인물이 아니던가. 애시당초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인공인 대쪽 검사로 세간의 인기를 타고 정치에 데뷔한 이력서대로 ‘호통 장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그였기에 최근 국회의원 지역구 공천을 받기 위해 최대한 몸을 낮춘 모습은 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홍준표 전 대표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우리 지역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기를 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우리시에 오겠다고 한 건 아니다. 자신의 고향인 경남 창녕을 중심으로 한 지역구에 공천 신청을 했다. 당내에서 존재감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당 대표까지 지낸 몸인데 원하는 지역에 공천받는 것 쯤이야 어렵겠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이끄는 공천관리위원회는 변화와 쇄신을 목표로 내걸고 큰 그림을 그린다는 명분으로 그에게 험지 출마를 명했다.

홍준표는 고향에서의 출마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근처인 밀양시로 이사까지 했지만 끝내 버티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그러나 수도권 험지 차출이라는 공관위의 요구에 ‘양산을 출마’라는 비상용 카드를 꺼내드는 묘수를 날렸다.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있는 곳에다 민주당의 잠룡이라 할 수 있는 김두관 전 장관이 출마한 만큼 PK(부산, 경남)지역의 험지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공관위의 답이 없자 그는 작심하고 통도사를 예방하는 등 시위까지 했지만 이날 공관위 면접장의 분위기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우리 지역의 거센 반발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홍 전 대표의 양산을 출마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 양산을 지역구 특히 웅상지역에서는 강력한 반발이 튀어 나왔다. 이미 예비후보로 등록해 활동하고 있던 김정희, 박인, 이장권 세 후보는 물론 지역의 ‘엄마부대’까지 출동해 극력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홍준표의 경남도지사 시절 학교 무상급식 중단 조치다. 당시 도내 학부모들의 엄청난 저항을 불러왔던 학교급식비 지원 중단 사태의 장본인이 전략공천으로 지역에 온다면 당선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민심을 거스리는 결과로 당의 이미지를 실추한다는 이유다.

이쯤 해서 문제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21대 총선을 앞두고 두 개의 선거구를 갖고 있는 양산은 원내 1,2당인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전 자유한국당) 후보 네 명이 모두 경선 없이 공천될 전망이다. 재선 현역 의원인 윤영석 의원이 나선 양산갑구의 경우는 그렇다 하더라도, 민주당의 두 후보가 모두 전략 공천을 받았으며, 또 이에 더해 미래통합당도 양산을구에 전략 공천을 시도하고 있으니 시민 유권자들로서는 기존 정치권에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역민의 대변자를 뽑는 게 아니라 정치인의 경력 쌓기의 발판으로 전락했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은 물론, 다수의 지역 정치인을 ‘개무시’하는 결과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정치만 비민주적으로 흘러간다고 느끼는 사람이 필자만일까. 우리 고장에서 진정한 경선 현장을 지켜본 게 언제이던가. 지난 총선에서는 그나마 양산을구 자유한국당 후보를 경선으로 뽑았다. 여론조사 경선이긴 했지만. 언젠가 시장선거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실내체육관에서 공개경선을 했던 기억이 있다. 정견 발표와 당원 투표로 후보를 결정하던 그 순간만큼은 시민의 자존감이 빛났다.

언제부턴가 정당 지도부는 국민의 대표를 뽑는다는 선거의 취지를 망각한 채 진영논리에 매몰된 승부의 현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기는 것이 지상목표가 되다보니 아예 선수를 데려다 엉뚱한 곳에 내보내는 짓이 다반사가 되었다. 36만 양산시민이 스스로 선택한 후보가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에서 차출된 선수를 따라 어깨춤을 추는 형국이 되고 만 것이다. ‘힘 있는 후보가 당선돼야 지역발전 시킨다’는 구시대적 구호가 아직도 난무하는 선거판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미명에 불과하다. 시민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스스로 지지할 후보를 선택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저작권자 © 양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