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장면

“아카데미상은 그저 지역영화제 아닌가요”

봉준호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언젠가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지나치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응수한 말인데, 세계인을 상대로 열리는 ‘무비 페스티벌’이 아니라 미국 나아가 헐리웃이라는 동네 잔치로 격하시켜버림으로써 우리나라 영화팬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었던 레토릭이다.

그 봉준호가 드디어 아카데미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지난 10일(한국 시간) 오전 미국 영화산업의 심장부 로스엔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장은 거의 한국신드롬이라고 해도 무방할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이라이트인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핵심 부문인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한데다 국제장편영화상까지 손에 쥐어 4관왕에 오른 것이다. 최고 경쟁작이었던 샘 멘더스 감독의 <1917>을 완벽하게 제압한 결과다.

국제장편영화상과 각본상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지만 감독상과 작품상은 정말 국내 영화팬들조차 뜻밖으로 받아들일 만큼 쇼킹한 결과였다. 비록 연기상 4개 부문에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아카데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상을 대부분 받았기에 이번 시상식을 <기생충> 잔치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영화 매니아들은 잘 알고 있지만, 아카데미상은 칸영화제나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 등 다른 국제영화제와는 달리 영화인의 축제라기 보다는 잘 만들어진 영화와 연기에 대한 포상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많은 영화인들이 오스카(아카데미상의 트로피를 달리 부르는 애칭)를 품에 안는 것을 경력의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카데미상을 시상하는 위원회의 구성이 대부분 백인들로 구성되어 있어 ‘그들만의 잔치’로 폄하된 적도 있었다. 그래서 흑인사회와 흑인 영화인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고 시상식 불참 등 시위를 벌인 적도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흑인 소재 영화는 물론 여타 유색인종 나라들의 작품에도 관심을 돌려 시상 대상을 늘려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멕시코 출신 감독인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외국어영화상과 감독상을 받았고, 2018년에는 역시 멕시코의 기예르모 델 토로가 <사랑의 모양>으로 감독상과 작품상을 받았다.

멕시코는 2016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감독상을 받은 바 있어 자국의 3대 유명감독이 모두 오스카 감독상을 받은 진기록이 있다. 그러나 멕시코 영화계는 거의 미국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에 진정한 이방인의 수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동양의 수상 사례로는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 번이나 감독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20대에 미국으로 이주해 공부하고 활동한 거의 미국인이다.

어쨌거나 <기생충>의 대박은 한국 영화계의 위상을 몇 단계 격상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상업영화의 성공여부에 지대한 프리미엄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아카데미상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 영화의 해외 수출의 증대와 개런티의 급상승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특히 <기생충>은 세계 유수의 영화제와 시상식을 휩쓴 미증유의 기록으로 한국영화 100년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세웠다. 칸느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비롯하여, 영국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과 각본상,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 아카데미 이전에 거행되는 대부분의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획득했다. 한국영화는 고 신상옥 감독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2>를 아카데미에 출품한 이래로 꾸준히 도전했지만 후보에 오른 것도 <기생충>이 처음이며, 비영어 제작 영화가 작품상을 탄 것은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최고의 평가를 받아도 손색이 없다.

여기서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보여준 수상소감 장면은 그 자체로 짧은 영화처럼 다가왔다. 이미 유수의 상을 휩쓸어 시상식 등장이 숙달된 탓인지 봉 감독 특유의 유머와 재치가 한껏 빛나는 장면이 되었다. 특히 감독상 수상 소감 첫머리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이다”라는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말을 인용해 함께 후보에 오른 거장 감독에 대한 경의를 표함으로써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또, 주최측이 허락만 한다면 오스카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다섯 동강을 내어 다른 후보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을 때는 환호와 웃음이 장내를 진동시켰다. 여기서, 텍사스 전기톱이 무언가 하면, 1973년 발생한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2003년작 공포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The Texas Chainsaw Massacre>에 나오는 살인 도구를 인용함으로써 미국영화인들을 자극한 것이다.

봉 감독은 통역을 대동하면서도 우리말과 간간이 영어를 섞어 소감을 말하지만 기본적인 유머감각과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연설을 할 수 있는 건 ‘영화’라는 만국공통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 소감에서 “자막의 장벽은 장벽도 아니다. 그 1인치 되는 장벽을 뛰어 넘으면 여러분들도 훨씬 많은 작품을 즐길 수 있다”는 말로 영화의 예술성을 강조한 바 있다. 또 기자회견에서 외국어 영화로는 북미에서의 흥행 성적이 뛰어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기생충>은 결국 가난한 자와 부자 즉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인데, 미국이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이기에 뜨거운 반응이 있을 수 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어요”라는 말로 화답하기도 했다.

봉 감독은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는 출연배우진에게 영광을 돌리면서 배우 송강호 앞에 무릎을 꿇고 트로피를 바치는 세레모니를 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등 시상식에서도 여유있고 재치있는 모습으로 세계 영화인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일약 세계적인 병장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우리 영화계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한창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사태로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한여름의 시원한 소나기처럼 청량한 소식을 보내 온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제작진과 출연배우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축하해 마지 않는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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