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수 교수의 중국이란 코끼리 다루기]
4. 중국 이해가 어려운 세 번째 이유는 '생활 여건'

중국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체면 손상
관시는 난세를 돌파하는 중국사람들의 부득이한 몸부림
끼리끼리는 뭉치지만 이방인에게는 배타적인 중국사람들

1) 관시 문화

중국은 지대물박(地大物博)한 나라입니다. 땅 크기는 러시아 캐나다 미국에 이어 4위이고, 지하자원도 풍부합니다. 철광석 매장량이 미국과 영국을 합친 것 보다 많고, 석탄도 세계 매장량의 15%이며, 텅스텐은 72%나 됩니다. '첨단 산업의 비타민'인 희토류는 90%를 생산 공급하고 있습니다.

자급자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산유국이기도 하지요. 기후도 열대부터 한대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어 동식물 자원도 다양합니다.

▶세계 인구의 5분의 1
하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면적은 넓지 않습니다. 1인당 경지 면적은 세계 평균의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중국 땅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많습니다. 2천 년 전에도 세계 인구의 20%가 살았고, 1천 년 전에도 그랬으며, 1662년 세계 인구가 5억 명이었을 때도 1억 명이었습니다. 1949년 공산당이 신 중국을 선포할 때도 세계 인구의 20%인 5억 4천만 명이었고, 2019년 14억 명도 거의 5분의 1에 해당합니다.

비슷한 크기의 미국 인구가 3억 3천만 명이고, 또 다른 비슷한 면적의 유럽 인구가 5억 명인데 비하면 중국 대륙에 사는 사람이 많은 건 확실합니다. 경지 면적은 부족한데 사람 수는 많다면 한 마디로 척박한 생존 환경이지요.

사람 사는 세상은 어느 시대나 어느 공간에서나 대동소이하지만, 그래도 넉넉한 것과 부대끼는 건 차이가 좀 나지 않겠습니까. 부대낄수록 좋게 말하면 단련되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닳고 다는 것이겠지요.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란 말도 그래서 나온 겁니다.

살벌하고 각박한 생존 환경에선 두 가지 선택이 있겠습니다. 끼리끼리 뭉치는 방법과 온갖 꾀를 다 동원하는 방법입니다. 끼리끼리 뭉치다보니 관시(關係)가 발생하는 것이고, 온갖 꾀를 동원하다보니 음모와 술수가 발달하는 겁니다. 편싸움이라도 기꺼이 해야 하고 뭐든 용의주도하게 해야만 서바이벌 할 수 있는 생존 환경입니다. 병법이 발달하고 궤계가 백출하는 그래서 종국에 가면 아예 원칙이 없는 원칙이 최고의 원칙이 되는 그런 공간이 되는 겁니다.

 

▶관시문화 발달의 배경
먼저 관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관시는 중국인 특유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말합니다. 재벌이 한국 특유의 기업 집단이어서 영어로 'Jaebul' 이라 쓰고 고유명사 대우하듯, 관시도 영어로 'Guanxi'라고 쓰며 이미 고유명사입니다. 관시 문화가 발달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뭘까요? 귀신요? 중국인은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생각합니다. 망자를 보내면서 0이 수도 없이 많이 붙은 고액권 지전을 태워줍니다. 황천길도 노자돈만 두둑하면 걱정 없습니다. 귀신,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요? 중국인들에겐 세상 종말이나 구원 같은 개념이 없었습니다.

인생은 음식남녀이고, 살면서 오복을 누린다면 그것으로 족할 일이지요. 담배와 술 그리고 차와 사탕만 즐길 수 있어도 괜찮은 인생이라고 여길 정도입니다. 죽음마저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신선도 사람이 죽어야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뭘 무서워할까요?

중국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건 체면을 잃는 일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일입니다. 공맹이든 노장이든 어차피 인격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니 하늘 쳐다 볼 일 없습니다. 내 안의 양심의 소리는 물론 의식하지만 목숨을 걸 일은 아닙니다. 가장 의식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입니다.

사실 중국인을 규범해온 삼강오륜도 하나하나 따져보면 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땅히 지켜져야 할 도리와 경우를 규정한 내용입니다. 통치자와 피치자 사이의 충과 예를 기반으로 하는 역할과 의무 관계, 부부 사이의 서로 끌어주고 덮어주는 관계 그리고 형제나 선후배 간의 교학상장 하는 관계 등 모두 사람살이의 규범들이지요.

이 규범 즉 사람으로서의 도리와 경우를 지키지 못해 지목받게 되면 인간 대우 받기는 어려워집니다. 관시가 생겨난 첫 번째 배경이 바로 사람 관계를 중시하고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방책
관시 문화가 생겨난 두 번째 이유는 국가가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해왔기 때문입니다. 중국 역사는 분열과 통합이 멀미가 날 정도로 짧게 반복된 세월입니다. 분열이 지속되면 통합되고 통합된 지 오래되면 나뉘는 과정이 반복되어, 2천년 절대 왕정 시대의 왕조 평균 연수가 불과 백년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은 뜨르르한 영웅호걸들 입장에선 건곤일척의 승부겠지만 백성 입장에선 생불여사의 시간과 공간 아니겠습니까. 짧은 주기로 분열과 통합이 거듭되는 동안 인구가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 한 역사는 곧 국가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늘 불안한데 사람 수는 많았으니, 백성으로선 개인 개인을 일일이 돌봐주지 못하는 국가 대신 뭔가를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역사적 경험이 몸에 밴 상황에서 국가가 안전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중국인들이 선택한 방법은 끼리끼리 뭉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가족이나 친지란 범위를 넘어 넓은 의미의 패밀리를 만들어 삶을 모색하는 겁니다. 그렇게 형성된 패밀리 안에 드는 사람들끼리는 간도 내어줄 정도로 극진합니다. 그걸 간담상조(肝膽相照)라고 하지요. 그 옛날에 담즙을 간에서 생성한다는 사실을 어찌 알고 그런 말을 지어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아무튼 패밀리 사이엔 간담상조 하듯 밀접하지만 그 범위 밖의 사람에겐 매우 배타적입니다. 우리 편(We Group)과 타인 (Out Group) 사이엔 분명한 대우의 차별이 존재합니다. 일단 우리 편이 되면 웬만한 경우엔 다 살 길이 보장됩니다. 우리 편끼리는 불법이든 탈법이든 또는 초법이든 일단 봐주고 넘어가는 것이지요. 공식적인 관계와는 별도로 조성된 아주 끈끈한 인간관계입니다.

관시는 난세를 살아내기 위한 중국인들의 부득이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시는 몇 대에 걸쳐 유지되기도 하고, 비즈니스와 정치를 막론하고 폭넓게 퍼져있는 거대한 네트워크이기도 합니다. 중국인 특유의 이 관시 문화는 중국인 사회에는 어디든 존재합니다. 중국 대륙뿐 아니라 홍콩과 타이완에도 존재하고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의 화교 사회나 미국과 유럽의 화교 사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시가 만들어낸 편법문화
관시가 만연한 사회에선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관시가 발언하면 틈이 많아집니다. 예외가 흔해지지요. 틈이 많고 예외가 흔해지면 사람들은 그걸 이용해 편리를 보려고 하게 마련입니다. 사회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흔들리는 사회가 되는 것이지요. 정식으로 해선 안 될 때 기어이 편법을 동원하고, 또 그 편법이 통하게 되는 겁니다.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 '뒷문으로 간다(走後門)'는 말이 있는데, 뒷문으로라도 문제를 해결하고 마는 마지막 열쇠가 바로 관시입니다.

문제는 관시가 사회의 선진화 정도에 따라 순기능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역기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잘하면 유정(有情) 천하가 되게 하지만, 잘못하면 죽도 밥도 아닌 뒤죽박죽 사회가 되게 하지요. 시비와 선악의 판단이 모호한 회색 지대를 넓게 합니다.

선진 사회란 제도화가 정착되어 있고 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말합니다. 그런 사회에선 관시가 딱딱한 사람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요. 물론 세상에 특권과 반칙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요. 그래도 선진 사회는 미국 시민들이 자주 접하는 "아메리카 합중국 대통령이 와도 안 되는 건 안 됩니다."라는 강단이 있고, 그걸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풍조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가 6년이나 남은 FBI 국장을 충성도 테스트에서 만족하지 않는다고 해임하자 의회가 청문회를 열고 특별 검사를 선임하고 언론이 앞 다투어 전말을 취재해 비판 보도하는 등 일련의 작업으로 견제하지 않습니까. 외교를 선거에 이용하고 의회의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하원에서 대통령의 탄핵을 의결했고, 상원에서 최종 판결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물론 양극단으로 나뉜 정당의 당파성과 상원의 구성 탓에 탄핵안은 통과되지 않았고, 향후 선거 과정은 더 지저분해지겠지만, 틈과 예외를 줄이려는 노력만큼은 인정해 줄만 합니다.

하지만 연고주의가 판을 치고 붕당끼리 사적 이해를 끌어주고 밀어주는 사회라면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대목에선 관시가 그 틈과 예외를 더 구조적으로 존속 확장시키는 역기능을 할 뿐입니다. 지금의 중국은 체제 전환기에 처해 있습니다. 기왕에도 틈이 많은 사회입니다만 특유의 융통성과 유연성을 좀체 정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정책이 있으면 대책이 있다는 태도로 생존해 온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당 지도부가 입만 열면 개혁이고 반부패를 욉니다만 단박에 투명하고 제도화된 사회로 이전하는 건 어렵습니다. 현실은 잘 안 되거나 되더라도 아주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막강한 당의 영도를 견제할 다른 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시는 여전히 부정적인 문화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구경꾼 문화의 팽배
여기서 관시 문화의 어두운 면을 잠시 보겠습니다. 패밀리 안에 들면 간담상조하지만 그 그룹에 들지 않으면 국물도 없는 게 관시의 한계입니다. 끼리끼리는 뭉치지만 낯선 이에겐 더없이 배타적입니다.

그래서 공덕심(公德心)이 없다고도 하고, 아예 배려라는 단어조차 없다고도 합니다. 관시 안에는 불법 탈법 초법을 막론한 보호막이 있지만 관시 밖은 무관심과 냉담이 있을 뿐입니다.

안타까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2017년 5월 산동의 웨이하이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터널 안에서 어린이 통학 버스에 화재가 발생해 부모 따라 와서 공부하던 한국 아이들 열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위급하고 속절없는 대목에서 놀랍게도 그 어떤 운전자도 버스 탑승객을 구하러 내리지 않았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둘러 하차하여 소화기로 불을 꺼주거나 하다못해 창문이라도 깨뜨려주었더라면 아이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중국 사회에선 이런 일이 아주 흔합니다. 사고 현장에 구경꾼들은 잔뜩 몰려있지만 선뜻 나서서 피해자를 도와주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걸 구경꾼 문화라고 하지요. 구경꾼은 중국어로 위간인(圍看人)인데, 빙 둘러서서 쳐다보기만 할뿐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중국인 스스로도 부끄럽게 여겨 위간인 문화를 보여주는 현장의 동영상을 공유하며 자성하기도 하지요.

이를테면 길거리에 70대 노인이 쓰러져 있는데 무려 178명이나 지나가면서 나몰라 하는 장면 같은 겁니다. 부축은커녕 신고조차 해주지 않습니다.

저는 구경꾼 문화의 원인이 뭘까 하고 이리저리 생각도 하고 중국 친구들과도 의견을 나누어보았습니다. 당연히 역사적 연원도 있겠으나 중국 공산당 치하의 억압적 통치가 정도를 심화시켰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나서는 게 더 두려워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노래가 한 곡 있습니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페이퍼 레이스(Paper Lace)란 영국 남성 팀이 있습니다. 'The Night Chicago Died'란 명곡으로 유명하지요. 그 밴드가 부른 노래 중에 'Billy, Don`t be a Hero'란 아주 경쾌한 곡이 있습니다. 곡조는 경쾌하고 신나지만 곡목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빌리야, 총 맞지 않으려면 나서지 말라"는 뜻이거든요. 내용인즉슨 미국의 남북전쟁 때 많은 빌리들이 선뜻 나섰다가 허망하게 죽거나 다쳤다는 겁니다. 괜한 영웅 흉내 내지 말고 조용히 길게 살라는 이야기지요. 문화대혁명이란 험한 세월을 지내면서 중국에도 나서지 않는 빌리가 더 많아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관시의 만연은 구조적 부패를 촉진합니다. 패밀리인 자기인(自己人)들 끼리는 거침이 없습니다. 하지만 관시의 반대편은 외롭고 삭막합니다. 구경꾼 문화가 바로 그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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