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평소 친분이 있던 사할린 동포 부부를 방문했었다. 2009년 대한적십자사의 사할린동포 영구귀국사업의 일환으로 고국에 돌아와 우리 양산에 터를 잡고 산 지 벌써 10년이 넘은 분들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이들은 벌써 우리나라의 따뜻한 기후와 인정에 젖어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고 계신다. 귀국 당시 정부에서 알선한 LH의 영구임대주택에서 정부 지원금과 몇 가지 생계 혜택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큰 걱정 없이 여생을 이어가고 있다. 단지 이들의 마지막 소원이라면 사할린 땅에 남아있는 자식들과 함께 고국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들 사할린동포 1세대들은 1945년 8월 해방되기 전에 태어난 동포를 말한다. 징용 등으로 사할린에 정착한 조선인들이 현지에서 낳은 첫 세대인 셈이다. 2009년 이전에도 정부와 적십자사의 노력으로 일부 사할린동포 가족들이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처음부터 조선인이었던 원세대들이다. 이들은 애시당초 조선인들이었기에 별다른 국적 문제가 없는 동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세대는 처지가 달랐다. 사할린섬이 일본과 구 소련 사이에 영토분쟁으로 속지가 뒤바뀌기를 몇 차례, 결국은 일본의 패전으로 철수할 때 그들이 강제로 데려와 노역을 시켰던 조선인들은 버려두고 일본인들만 본토로 돌아간 것이다.

졸지에 국적도 없이 동토에 남게 된 동포들은 결국 원치 않은 소련 국적을 얻어 머나먼 이역만리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한때 5만명에 달했던 우리 동포들은 남다른 근면성을 바탕으로 사할린에서도 부지런한 사람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수구지심이라 고향을 향한 본능의 정은 어찌할 수 없어 부모님의 땅인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지냈다고 한다. 이들의 염원이 통했는지 다시 사할린동포 영구귀국사업이 동력을 얻게 되어 2009년까지 여러 차례 귀향이 이루어졌다.

무릇 한 민족이 개인적 잘못도 없이 역사적 희생물로 고초를 겪게 되는 것을 방관하는 정부는 없다. 자기 나라 밖에서 전쟁에 참가해 목숨을 잃은 경우 그 시신이라도 찾아서 고국에 송환하는 것이 국가의 사명인 바, 살아있는 동포들의 돌아오고자 하는 마음을 내몰라라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물론 우리 사할린동포의 경우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는 한일관계의 고리를 보라.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 처녀들의 억울한 사연과 강제징용과 징집의 결과로 파괴되고 갈라진 우리 민족의 비극이지만 당사자인 일본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마당이라 선뜻 정부 차원에서 송환작업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해방 후 조선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북한과 둘로 나눠지는 분단을 겪었기에 해외에 나가있는 동포의 송환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광복 75주년이 지난 이 시점에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하는 우리 민족에 대해 통로를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은 번듯한 국가의 외교부가 변명할 일은 아니다. 자신의 뜻과는 달리 러시아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동포들 아닌가. 그들은 아직도 우리 민족의 의식주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며, 우리 노래와 춤을 기억하고 있으며, 전래의 미풍양식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간헐적으로 이어온 영구귀국사업으로 이제는 부모와 자식 세대가 서로 다른 땅에서 떨어져 살게 되었다는 점이다. 11년 전 이 땅을 밟은 사할린 동포들 대부분의 나이가 이제 여든에 가까워 여생이 많이 남지 않은 분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귀국해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늘 자식들 생각에 가슴 한켠은 비어 있다.

지난 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무성 의원이 발언을 통해 “일본과 매듭짓지 못하고 있는 위안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와는 별개로, 일본과 러시아 정부에 당당하게 요구해 귀국을 원하는 동포들이 평화롭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할 터인데 정부에서는 제 할일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본과의 관계에 불구하고 우리 동포의 고국 귀환에는 정부가 직접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가족들의 공생을 가로막는 일에 어떤 변명이 통할까.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동포라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돌아와 고향의 향기를 맡으며 가족들과 어울려 살아갈 자격이 있다.

어제 만나고 돌아올 때 76세의 사할린동포 최씨 어르신의 눈가에 맺힌 이슬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인지 모른다. 자신이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행복마저도 그다지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어르신의 애환을 생전에 달래줄 수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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