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 육체를 가진 인간에겐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살아있는 인간은 끝없이 움직인다. 무엇과 부딪치고 충돌하면서 우선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의식한다. 이 과정에서 아픔을 경험하고 타자와 분리된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그 점에서 감각은 삶의 의미를 선명하게 환기해주는 매개이자, 세계 및 타자를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감각이 타자 발견의 통로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시각, 즉 '눈'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사물들에 대해 불친절하고 위험하며 파괴적일 뿐 아니라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눈은 타자를 향해 열린 통로이지만, 결코 친밀한 관계로 이어지진 않는다. 다른 감각기관과 달리 대상을 객관화함으로써, 나/너 사이에 거리를 설정하고 그것을 유지시킨다. 내 눈에 '보아지는' 너는 나의 시선(觀)에 의해 한정되며, 너의 다른 많은 가능성은 배제된다. 이 논리가 시각의 논리이다.

시각은 대상을 소유?지배하려는 욕망을 작동시킨다. 보이지 않는 것. 즉 듣고, 맡고, 맛보고, 느끼는 감각은 불확실하고 불확증적인 것이기에 소유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각만은 예외다. 우리는 왕의 곤룡포나 군대의 계급장, 어떤 조직체의 배지(badge)와 같이 '본' 것을 전제로 그것을 욕망하게 된다. 어떤 옷이 좋고 어떤 집이 좋고 어떤 물건이 좋다는 것도 언제나 '보이는 감각'을 전제한다. 이때 동반되는 심미적 가치 평가의 비중은 사람(人)-간(間)의 관계를 위계서열화하고, 대상을 지배하는 데 일조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자본도 바로 이 '보이는 감각'에 입각해 있다. 자본주의는 시각(image)을 통해 우리의 오감을 장악해 간다. '음악(청각)'도 이어폰을 통해 혼자 듣게 하고, 꽃향기(후각)도 채집하여 유리병에 담아 상품화한다. 물(미각)도 플라스틱 통에 담아 시각화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촉감(촉각)도 시각화하여 우리를 종일 기계에 매달려 있게 한다. 그 속에서 우리의 '살아있는' 감각은 점점 더 마비되어 가고 있다. 

실재하는 것, 변화하는 것은 느끼지 못한다. 타자의 신음소리, 죽음의 냄새를 맡아도 통각(痛覺)할 수 없다. 우리는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을 우위에 둔다. '보이는 감각'을 신뢰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 물론 '보는 것'은 세계 및 타자를 인식하는 데 꼭 필요한 필수감각이다. 예이츠의 말처럼 사랑도 '눈'으로 든다. 그러나 눈(眼)에 머물러 있어서는 참된 관계(사랑)에 이르지 못한다. 관계는 그녀의 소리(耳)를 듣고, 냄새(鼻)맡고, 맛(舌) 보고, 피부(身)로 느끼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시각은 결코 살아있는 감각이 될 수 없다. 차가운 기계 안에 저장된 새소리는 실제 새소리가 아니다. 시각이 지배하는 순간 모든 존재는 그 본래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진짜 좋은 것은 대상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것이다. '보고 싶다'는 차원이 아니라, 살아있는 대상을 온몸으로 감각해야 한다.

살아있는 것은 흐르고 움직이고 변한다. 결코 내 시선으로 고정시킬 수 없고, 움켜쥘 수도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대상을 소유물로 생각할 때, 움켜쥐려 할 때 대상은 100% 파괴된다. 자식도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도 그렇다.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들이 놀이터에 가서 모래와 흙을 만지고 놀게 해야 한다. 놀이터에 깔린 우레탄을 걷어내고, 아이들이 모래와 흙과 사랑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그것들은 결코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 없음을 스스로 감각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 대상을 내 곁에 고정시키려하고 내 것으로 소유하려 한다. 그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야 겨우 떠나는 걸 허락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살아있을 때 떠나보내는 것이다. 내 안에 가두지 말고 그/녀가 세계를 새롭게 감각하게끔 내버려두어야 한다. 우리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밖으로 나온 것도 또 다른 생명체로 살아가기 위해서이고,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도 또 다른 생명을 길러내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세상에 내 것은 어디에도 없고, 움켜쥔 것은 반드시 놓아야 한다. 오른손에 생수통을 한번 쥐어 보자. 그 손으로 다른 무엇을 잡을 수 있는가? 

저작권자 © 양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