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양산시가 연례 정기인사를 발표했는데 대상 인원이 무려 수백명에 이른다. 승진과 전보가 그 대상인데 이렇게 많은 인원이 자리를 옮기는 데도 업무가 제대로 추진되기나 하는지 우려된다. 과거 같으면 시청 정문에 축하 화분을 실은 배달차가 줄을 섰을 것 같다.

수요는 공급을 부른다지만 행정의 측면에서 볼 때는 오히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양산시의 공무원 수가 1천명을 넘은지 오래다. 상주 인구가 36만을 돌파해 계속 증가 추세인 점을 감안해도 지방행정기관의 조직이 과도하게 비대해진 건 사실이다. 이런 현상을 가장 반기는 계층은 당연히 공무원 조직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샐러리맨이 한가지이겠지만 직장인들의 가장 큰 소망은 승진이다. 양산시 인사에서 4급 서기관과 5급 사무관으로의 승진 대상자가 20명에 이르는 것은 누가 봐도 큰 잔치다. 1996년 양산시 승격으로 인사 대박을 터뜨린 이후 지속적인 기구 확대로 양산시 공무원들의 승진소요기간은 타 시군 공무원들이 부러워 할 수준이 되었다.

일반 시민들이 볼 때 공무원 정원은 지나치게 많다. 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으로 군살을 뺄 때에도 공직사회는 꿈적도 않는다 해서 ‘철밥통’이란 어울리지 않는 별칭도 얻은 바 있다. 과연 그럴까. 지금이라도 공직에 종사하고 있는 일반 공무원들에게 물어보면 격무에다 인원 부족을 들먹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회복지에 대한 정책이 남발되다보니 복지 담당공무원들은 과로로 변을 당하기도 한다. 일부 고위직을 제외하고는 대개의 경우 과도한 업무량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오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시청 옆 도로를 지나가 본 사람은 청사 내부에서 퇴근길에 나선 차량의 끝없는 꼬리물림에 놀란다. 정시퇴근이 직장인의 미덕이 된 지 오래지만 공무원들의 정시퇴근 행렬은 낯설기만 하다. 정규시간을 넘긴 근무에 수당이 지급돼야 하니 불필요한 야근을 줄인 것은 옳은 일이다. 다만 그들의 정시퇴근이 상징하는 것은 그들의 주장대로 격무나 과로하고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인구가 늘고 산업이 다양화되면서 행정수요가 급증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또 그 수요를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 시청의 부서가 모래알처럼 세분화되고 그것도 모자라 시청, 출장소, 읍면동 단위로 구분되어 있으니 기초 단위부서마다 최소한의 인원을 배치한다고 해도 모아 놓으면 큰 숫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대한 공무원 조직을 슬림화시킬 방법은 없을까.

오래 된 이야기지만, 지방자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의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헐리웃 영화를 좋아하는 올드팬이라면 다 아는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인물이 캘리포니아주의 인구 5만 소도시 켄트시의 시장으로 선출된 적이 있다. 물론 주민 직접투표의 결과다. 당시 켄트시는 누적된 재정 적자로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클린트 시장은 취임하자마자 시청 공무원 절반 이상을 해고했다. 그리고는 행정사무를 재검토해 민간이 할 수 있는 사무는 모두 민간에 이양하고, 직접 해야 할 일도 대부분을 자원봉사 시민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그의 임기 중에 시청의 파산을 면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 일화에 답이 있다. 지금의 행정조직을 유지하면서 공무원 숫자를 줄일 수는 없다. 비단 양산시만의 사례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근 지방행정조직의 개선이 이슈로 대두되기도 한 만큼 읍면동의 민간 전환이나 시군청의 폐지 논제에 대해 보다 전향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일선 행정기관의 공무원들이 직접 주민계도에 나서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식량증산을 위한 농사지도, 산아제한을 위한 가족계획 계몽은 물론이고, 벼 수매 지도, 세금징수를 위한 현지출장 뿐 아니라 병역기피자 색출을 위해 야간에 잠복하는 사례까지 밤낮없이 일해 온 공무원들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행정 처리방법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사무들이 불필요하게 됐다. 물론 시대적 변천에 따라 새로 생겨난 사무도 많은 건 사실이다.

혁신은 과감한 쇄신에서 온다고 했다. 지금도 일부 행정사무를 민간에 위탁처리하고 있는 것이 많다. 또한 세무행정이나 건축, 상하수도업무 등 일부 사무는 전문적인 외부기관에 용역처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공무원 개개인의 격무도 줄이고 정원의 축소로 인건비 예산을 축소해 다른 용도로 쓴다면 훨씬 더 시민을 위한 행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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