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공작소

                                               이미정 시인

공터가 해체됐다

돌담이 허물어지자 담쟁이가 길을 잃고 서성거린다

해가 긴 머리채를 뒤로 넘기며 쓸고 지나간다

쑥부쟁이가 꽃말을 떨어뜨렸다

타공기가 땅 속 깊은 음역대를 짚으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며칠 내내 가림막 사이로 다듬질하는 소리가 들락거리더니

둔탁한 망치소리가 층을 타고 오르내리며 거푸집을 짓는다

홈을 메운다는 건 안에 있는 것을 들춰내는 것이어서

자로 잴 수 없는 간격을 맞추느라 나무와 나무들이

팽팽하게 밀고 당길 때마다 성긴 바람이 빠져나갔다

그 바람이 오르던 길을 계단이 걸어서 올라간다

방패연 같은 격자무늬 창문마다 노란 등불이 내걸리고

도대체 어디에도 없는 공터는

바람결에나 흔적을 묻어놓아서

골목을 지나갈 때면 한동안 늑골이 시릴 뿐

그저 하늘만 맑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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