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적당함을 좋아한다.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그런 적당함. 너무 많으면 그 과한 것에 끝없이 욕심이 생기고 너무 적으면 그 부족함에 갈증이 생기기 마련이니 말이다. 이런 적당함을 좋아하는 나에게 내가 살고 있는 ‘양산’은 정말 적당함의 정석이다. 시골과 도시가 적절히 조화되어 있는 그런 곳이다.

어떤 누군가는 영화관도 없고 백화점도 없는 시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없는 건 없는 곳이다. 있을 건 다 있다. 문제집을 살 서점도 있고 문제집을 복사할 인쇄소도 있고 독서실도 있고 은행도 여러 종류가 있다. 소소하지만 겨울에만 여는 스케이트 장도 있고 도서관, 문화센터, 공원 등 우리의 삶의 질을 올려주는 문화시설도 있다. 편의점도 많고 코인노래방도 있으며 만화카페도 있다. 새삼 하나하나 떠올려 보면 없는게 없다. 고깃집, 횟집, 국수집, 치킨집 등 없는 식당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프랜차이즈 떡볶이집은 없지만 맛이 각양각색인 다양한 분식점이 있고, 유명한 카페브랜드인 공차도 아마스빈도 없지만 보일러를 틀어주고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료를 파는 그런 개인카페가 있다.

강남 8학군처럼 큰 명문학교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각자의 장점을 가진 학교들이 있고 부족하지 않은 학원들이 있다. 대학병원은 없지만 치과,안과,내과,정형외과,피부과 등 없는 병원이 없고 응급실도 있다. 또 공장과 논밭, 산이 공존하고 대형마트와 시장이 공존한다. 적당한 수의 버스가 다니고 출근길과 퇴근길에 차가 막히는 정도의 적당한 복잡함이 있다. 적당한 정이 있고 적당한 개인주의가 있다.

이렇게 적당하게 있을 건 있고 없는 건 없는 환경이 큰 도시로 나갔을 때의 새로움과 신선함을 더욱 증폭시켜주고 거부감은 줄여준다. 매일 커다란 건물과 수많은 상점에 둘러쌓인 곳에 살아 그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내가 처음으로 서울에 갔을 때의 감정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그 사람들이 시골에 온다면 교통, 통신의 불편함을 느끼며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또 논밭에 둘러쌓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로 나갔을 때의 복잡함을 꺼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에 적절히 발걸친 생활을 해온 나는 어디에서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신선함으로 새로운 환경을 맞이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반은 시골이고 반은 도시인 양산을 매우 좋아한다.

물론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였다. 내가 먹고 싶은 브랜드의 카페가 없을 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무조건 차를 타고 나가야 할 때 등 이곳이 너무 시골이라 있어야 할 게 없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먹고 싶을 때 바로 가서 먹고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바로 가서 보는 환경에 있었다면 그것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이렇게 적당하게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곳이 나의 생각을 바꿔준다. 이렇게 적당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 시골에 사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살며 다른 생활방식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시골이라 할 지라도 나는 이곳이 좋다. 복잡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적당함이 있는 곳, 이제 성인이 되어 다른 지역으로 진학하지만 내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고향이 이러한 적당함을 지니고 있어서 좋다. 내가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는 나의 고향이 양산이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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