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허가를 받기 위해 시청 민원실을 찾았는데, 담당 공무원이 법적 요건이 맞지 않고 미비한 부분이 많지만 관련부서와 협의해서 최대한 해결해 보도록 노력하겠다고 공손히 말한다. 내심 불친절한 거절의 언사가 돌아오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던 민원인은 허가가 떨어지고 아니고를 떠나서 흡족한 마음으로 관청을 떠난다.

편의점을 찾은 어르신이 계산을 치르고 나간 뒤에야 셈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된 알바생이 자기 돈을 물어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어르신이 다시 돌아와 거스럼돈이 너무 많았다며 돌려주러 왔다. 그러면서 학생이 늦은 시간 고생이 많다며 오히려 격려를 해주고 떠난다. 알바생은 울컥 고마운 마음에 더욱 용기를 얻는다.

기술자 십여명을 두고 대기업 2차 하도급으로 근근히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김사장은 원자재 값이 폭등해 수지 맞추기가 힘이 들어 문을 닫을까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어느 날 원도급업체에서 소집이 있어 가 보니 본사의 비용절감 노력으로 하도급 단가를 올려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고 한다. 그래, 한번 더 힘을 내 보자.

‘갑’의 이런 행동은 이른바 ‘갑질’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질’은 명사 뒤에 붙이는 접미사로, 직업이나 행동 등을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도둑질, 서방질 등이 그러하며, 선생이나 목수 같은 신성한 직업 뒤에 붙이면 낮추어 부르는 말이 된다.

갑질은 갑을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말이다. 여기서 갑을관계라는 것은 계약서에 나오는 주체를 대신하는 말로 예로부터 시키는 자가 ‘갑(甲)’, 시킴을 받는 자가 ‘을(乙)’로 약칭되는 것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대기업 총수 가족이 사소한 직원의 실수를 꾸짖으며 여객기를 되돌린 이른바 ‘땅콩회항사건’이 갑질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 밖에도 우리 사회에는 크고 작은 갑질 사례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갑질의 피해를 받고 있는 대상이 바로 우리들의 평범한 이웃이요, 자녀들이라는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성년이 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비를 벌기 위해서나 생활비 또는 용돈을 벌기 위해서 그렇다. 청소년들이 과욋일을 할 환경은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편의점 근무가 가장 흔하며, 음식점 서빙이나 배달 일 등 몸으로 때우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항상 손님을 응대해야 하는데 이유없이 욕설과 폭행을 당하는 등 모욕적인 대우를 받는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기업들의 상하관계에서도 갑질의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유형은 인신공격 보다는 금전적 불이익을 감수하게 하는 측면에서 매우 비열한 행위다.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의 오너와 입주가맹점 관계에서 갑이 을에게 무리하게 부담시키는 금전적 부담은 계약서상 부당함이 분명하지만 을의 입장에서는 영업의 존폐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맞대응을 하기가 어렵다.

일반 제조업의 하청관계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원청업체의 손실부분을 하청업체에 떠넘긴다든지 하도급 단가를 후려쳐 영업 마진을 축소시켜 운영이 어렵게 만드는 갑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만연돼 있다. 오죽하면 1차 하도급업체가 자신이 받는 갑질에 대응하기 위해 2차 하도급업체에 대한 갑질을 자행하는 일까지 나올까.

공직사회에서 대민업무 개선이라는 명제는 그 바탕에 관의 갑질이라는 병폐가 깔려 있다. 시민들은 시청이나 산하 행정기관에 가서 인·허가를 받아야 할 때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처음 맞닥뜨리는 담당 공무원의 불친절한 태도다. 안 된다는 대답부터 먼저 한다는 것이다. 단속의 대상이 되었을 때는 그보다 더한 수모도 참아야 한다. 관청의 문턱은 높기 때문에 민원인을 대하는 공무원의 첫인상이 전체 평가를 좌우한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리가 인간세상도 지배한다지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존중하는 미래안적 예의에 다름 아니다. 항상 강자요 권력자일 수는 없다. 언젠가는 약자가 되어 자비를 구해야 하는 시절이 온다. 갑은 을의 도움으로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을은 반대로 갑을 시기함이 없이 그들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공정한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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