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 수학박사

1961년 미국의 수학자이자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츠는 컴퓨터를 이용해 날씨를 예측하는 수학적 모델을 만드는 중이었다. 1961년이니 컴퓨터의 계산 능력은 요즘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낮았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비 모양의 그림이 나왔다. 이것을 잘 분석하면 날씨를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처음 계산에 사용한 초기 조건 값 0.506127 대신 0.506을 넣었다. 소수 4번째 자리는 무시해도 될 만큼 작은 수이지만 계산 시간은 많이 절약하면서 비슷한 모양의 그림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림은 전혀 다른 모양이었고 그것을 이용해 날씨를 예측한다면 처음 결과와는 전혀 다른 날씨 예보가 되는 것이었다. 초기 조건의 값은 조금만 변해도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이 관찰로부터 “혼돈이론 (카오스 이론)”이라는 것이 나오게 된다. 컴퓨터의 계산 속도가 예전 보다 훨씬 빨라진 오늘 날에도 날씨 예측은 그 카오스적으로 변하는 성격 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 카오스 이론은 현대 로봇 공학, 암호학 등 여러 분야에 응용되는 이론이다.

1972년 로렌츠가 어느 과학 진흥 모임에서 이 내용의 강연을 하기로 했는데 제목을 주지 않자 동료가 강연 제목을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개 짓이 텍사스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가?” 라고 다소 시적인 제목을 달았다. 그 후에 브라질이 중국이 되기도 하고 텍사스가 뉴욕이 되기도 하는 등 조금씩 바뀌었지만 나비효과 라는 용어는 일반인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져서 어느 곳의 작은 움직임이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2004년도에는 나비효과 라는 이름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자신의 과거 일기장을 보면서 과거의 한 지점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주인공이 과거의 일을 바꾸면 미래도 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한편 나비 효과와 더불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을 생각하면 흥미롭다. 얼핏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은 깨어지고 바위는 꿈적도 안하는 상황 같다. 그것을 알지만 자신을 부서뜨리면서라도 바위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는 계란의 비극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절망적 이야기 같다.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가 그렇게 절망을 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비의 날개 짓이 지구를 반쯤 돌아서 다른 곳의 태풍이나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기 때문에 저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란이 와서 깨어지는 것을 보고 바위는 “깜짝이야~ 그래 너만 깨어졌잖아.”하면서 속으로 싱긋 웃을 수도 있고 아니면 노골적으로 야유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곳에 오래 전부터 그냥 있어 왔기 때문에 자리만 차지하고 견문도 없고 성찰 능력도 없는 바위가 모르는 것이 있다. 계란의 목표는 처음부터 바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계란을 던진 사람은 바위 따위는 처음부터 신경도 안 썼다. 지구의 저 다른 편에 태풍을 일으키는 것이 계란을 던진 목적이었고 계란이 깨어지면서 지구의 저 다른 편에 태풍이 일어날 것을 알았던 것이다. 나비의 날개 짓이 태풍을 일으킨다면, 그 태풍은 지구의 또 다른 반대 편, 나비가 있는 곳에 무엇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무엇은 바위 따위는 날려 버리는 그런 강력함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바위는 지금 웃는다하더라도 승리는 계란 또는 계란을 던진 이의 몫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작은 선택들이 나중에 다른 곳에 큰 태풍을 불러오는 나비의 날개 짓일 수 있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하는 바른 선택, 정의와 사랑에 근거한 선택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책무를 다 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당장은 나에게 불이익 같아 보이기도 하고 외로운 몸짓 같아 보인다 하더라도. 많은 용기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고 있고 그래서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 2020년 새 해에, 나도 좀 더 용기 있는 선택을 하며 살자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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