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을 100일 정도 남겨둔 시점에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선거일 90일 전까지만 허용되는 행사이다 보니 데드라인이 1월 15일이다.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에게 출판기념회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일석이조의 이벤트다. 자신의 존재감을 대중에게 알리는 효과는 물론이고, 책을 팔아서 얻는 수익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정치자금을 획득하는 길인 것이다. 물론 지명도 높은 일부 정치인들에게나 통하는 소리다. 중앙 무대에서 명성이 있는 중량감 있는 인사가 한 번의 출판기념회에서 수 억원의 후원금을 얻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다. 지방정치에서 같은 공식이 통하지는 않겠지만 선거법상 책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니 참석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한두 권의 책을 사갈 수밖에 없다.

대규모 합동 유세가 사라진 상황에서 1톤 트럭을 개조한 닭장차 같은 걸 타고 다니면서 소음 기준치 이하의 메가폰으로 자신을 알려야 하는 현행 선거법을 준수하려면 출판기념회는 ‘임팩트 있는 폭탄세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후보 진영의 참모들은 관중몰이에 전력투구한다. 누구의 출판기념회에 모인 손님이 더 많은지가 여론조사 못지않게 후보 지명도의 척도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주목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현장에서 돈을 주고 사는 책이지만 실제로 책을 정독하는 독자는 드물다. 그렇다고 저자가 대충 성의없이 써내려간 책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치인이 되려면 작문실력도 타고나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렇게 자신을 멋지게 포장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말씀을 들어볼라치면 그다지 내공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책에서는 사뭇 달라진 글솜씨를 과시한다. 무슨 재간인지 책의 장정과 스타일도 수준급이다.

행사 진행도 버라이어티하다. 주인공의 악기 솜씨를 뽐내는 것은 애교라 치고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초청가수의 연주에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하는 사회자의 매끄러운 진행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저자의 극적인 등장을 위해 마련한 자리이니만큼 얼마나 뜨거운 열기를 장내에 가득 채우는가 하는 것은 사회자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출판기념회를 열 수는 없다. 적지 않은 돈이 들 뿐더러 책 속에 담을 내용이 마땅치 않은 사람이 선뜻 나서기는 어렵다. 자칫하다간 엉터리 출판물 하나 내놓고 생색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없지 않았다. 물론 정식 문학작품이 아닌 만큼 교양적 가치를 따질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1만원이 넘는 가격을 매겨 판매하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도서 출판기념회가 정치인들의 선전장으로 이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법이 만들어지는 순간 법망을 빠져나가는 법도 함께 나온다’는 시중의 진리다. 공직선거법이 수많은 개정을 거치면서 현실에 부합되게 변모해 왔지만 실상을 따라가기는 요원하다. 최근 선거법 위반 재판이 지속되고 있는 몇몇 유력 정치인들을 보면 어떤 이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야기다.

지난 해 10월 더불어민주당 당원 4명이 선거법 제250조1항, 형사소송법 제383조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허위사실공표죄 규정에 담긴 ‘행위’와 ‘공표’라는 용어의 정의가 모호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 등에 반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당시 해당 선거법 조항이 ‘행위’에 대한 고무줄 해석으로 선거후보자에 대한 ‘재갈 물기’를 초래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신청을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임으로써 심사 결과에 따라 재판의 향방도 달라질 수 있는 소지가 생겼다. 물론 이재명 본인의 신청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대법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재명 본인도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신청을 했기 때문에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에는 재판이 일시 중단될 수 있다.

우리 시 김일권 시장의 대법원 판결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혐의와 비슷한 사례이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상황 전개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치 상황에서 총선에 나섰지만 내심 시장 재선거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정치인은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애타게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출판기념회라는 최고의 선전장을 열면서도 목표를 단호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후보자들의 안타까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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