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에 ‘소통’이란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불통이라는 것이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말이 통하지 않으면 먼저 사는 재미가 없다. 아무리 의식주가 넉넉해도 얼굴이 환하지 못하다. 내면에 오해, 냉소라는 암세포가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결국 대수술을 해야 된다. 의사소통에 묘수가 있을까. 상대를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사람이 어찌 완전하랴. 들어주리라 안아주리라는 맘이면 된다.

은하단에 딸린 우리 은하계 1천억 개 항성 중 하나가 태양계이며 그에 딸린 행성 가운데 지구도 있다. 이 땅별에서 잠깐 동시대에 사는 우리 인연들이 귀하지 아니한가.

우리 지역도 도시화 바람에 풍습이 변질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그 중 놀이문화와 음식문화를 살펴보면 벌써 40~50대 전후로 하여 소통의 부재, 나아가 단절현상이 보인다. 놀이문화로 땅따먹기, 자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팽이치기, 기차놀이, 술래잡기 등을 30대까지는 잘 모른다.

요즘 10대나 20~30대의 TV와 컴퓨터와 놀기, 특히 유치원생도 즐기는 컴퓨터 게임을 보면, 이 전자상자에 너무 빠져 걱정이다. 컴퓨터 과다 사용은 시간 허비, 눈과 허리를 비롯한 신체 이상, 정서의 기계화로 상상력 결핍, 사고의 단절 등을 유발한다. 시간을 정해 놓고 TV와 컴퓨터를 이용하고, 정리운동처럼 그에 비례한 일정 시간을 앞산 바라보기, 산책 등으로 심신을 풀어주어야 한다. 기계화라는 가랑비에 인간성이라는 옷이 다 젖는 걸 경계해야 한다.

음식문화도 주전부리로 밀과 콘 볶은 것이나 쑥떡, 부추나 누렁호박의 부침개일 때가 좋았다. 건강을 위해서는 요즘 사먹는 간식 대부분이 해롭다. 사이다, 과자, 아이스크림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젠 아이들과 20~30대 입에는 달고 고소한 게 길들여져 대책이 없을 지경이다. 사람들은 먹는 것과 보고 듣는 것 생각하는 것이 곧 자신이 되는 걸 왜 모를까.

얼마 전 어느 자리에서 한 세대 전 먹거리 이야기를 하다가 밥국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 가운데 40대는 밥국을 국밥으로 잘못 알아들어 설명을 한참이나 했다.

밥국은 식은밥에다 주로 김치를 썰어 넣고 물을 부어서 끓인 음식이다. 밥이 모자랄 때에 양을 늘린다고, 밥하기 어중간할 때 시간 줄인다고, 식은 밥으로 한 끼 때울 양으로 해먹곤 했다. 이르게 또는 바쁘게 일 나갈 때 배를 채우려고, 밥맛이 없거나 날씨는 춥고 허전한데 길을 나서야 할 때면 술술 넘어가는 밥국이 제격이다. 식은 밥과 김장김치를 비롯한 아무 반찬이나 주섬주섬 모아 대충 썰어 넣고서 끓인다. 마음이 바쁜데밥, 반찬, 물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어 좋고, 상차리기가 쉬워서 좋다. 속이 든든하여 추위가 가서 길 나서기가 한결 수월하다.

내 어릴 적, 어머니가 새벽같이 좌천장에 갈 때에 드시던 밥국은 거의가 맨밥국이다. 식은밥만 보글보글 끓여서 먹는 것을 어쩌다 부스스 눈을 비비며 보았다. 반찬은 우리 세 ᅟᅡᆷ매 얼굴이라 이놈 보고서 한 숙갈, 저놈 보고서 한 숟갈, 이놈들 잘 키워야지 하는 매운 마음이 침생에 녹아 잘도 넘기신 걸까. 어머니의 밥국이 눈에 선하니 나도 어머니의 아들이 틀림없다.

어느 사전에 국밥은 ‘국에 만 밥’, 국말이는 ‘1. 밥이나 국수를 국에 만 것. 2. 국에 말아서 끓인 음식’이라고 나와 있는데 밥국은 빠져 있다. 밥국은 국밥, 국말이와 다르다. 국밥은 각각의 국과 밥을 한데 말아서 먹는 것이다. 그래서 소고기국에 말면 소고기국밥, 돼짓국에 말면 돼지국밥이다.

밥국은 지역과 빈부, 솜씨에 따라 다르겠지마는 처음에는 끼니로 먹었다. 그러다가 배추김치뿐 아니라, 콩나물, 파, 멸치, 다시마, 달걀 또 국수와 가래떡을 넣기도 하여 별미로 진화되었다. 밥상 위에 남아 있는 신 김치나, 콩나물 반찬을 넣는 것과, 일부러 장만한 걸 넣는 건 엄청난 엥겔계수의 차이다. 여유가 있어 솜씨를 부리는 집에서는 식은밥을 안 쓰고, 쌀을 불려서 함께 끓인다. 부식물이 김치면 김치밥국, 콩나물이면 콩나물밥국, 맨밥이면 맨밥국이다. 이제 보면 식은밥과 남은 반찬 이용의 지혜, 비빔밥처럼 여러 반찬이 들어가 편식 방지, 해장국 효용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50대 이상 세대에게는 전기도 없이 못살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일 따름이다. 음식문화도 세대간 소통이 되면 밥상이 훨씬 따사로울 것이다. 그렇잖으면 밥상머리에서 노소(노소)가 서먹하다.

뭐니 해도 긴요한 소통 대상은 자신이 아닐까.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깨닫는 것, 사명을 발견하는 것, 제반 관계를 정립하여 인생의 낭비를 경계하는 것이리라. 또한 목적이 분명한 삶이 되려면, 반드시 미래와도 소통되어야 한다. 비저이 불투명하면 현재가 무료해 진다. 소통 여부는 무미건조한 일상과 싱그러운 나날의 갈림길이다. 살맛이 나면 입맛은 절로 당기리니.
 

허모종

시인, 수필가
옛 양산군 공무원
정관면장, 기장문인협회 회장 지냄
시집 일광 바닷가(2009)
산문집 달음산 그늘' 1, 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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