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1
새해가 되자 우리친구당 김순진 의원은 간밤에 늦게까지 잠도 자지 않고 직접 손글씨로 쓴 연하장을 고이 봉투에 넣어 길을 나섰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그가 향하는 골목 어귀에는 아직 어슴프레 빛이 남아있는 가로등 하나가 여명에 함께 불그스레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길을 재촉해 소슬대문집 앞에 다달은 그는 조용히 대문을 밀고 마당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대청마루에는 이미 기별을 받은 너도내벗당의 이희망의원이 흰 한복에 두루마기를 걸친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지요”
“어서 오시오”
“새해 원단에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잘 오셨소. 부디 경자년 새해 흰쥐의 복된 기운을 잘 받아 누리소서”
“의원님도 과년의 묵은 심려를 떨치시고 맑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십시오”
“고맙소이다”
“지난 세모에 우리 당이 국가위원회 설치를 위해 무리하게 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우리가 극구 반대했던 이유는 자칫 잘못 운용되면 나라 전체가 불신에 빠져 국민들이 혼란스러울까 우려했기 때문이었소”
“예,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안전 장치를 첨부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었지요. 넓으신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자리에 있으니 방향이 조금 다르다 하더라도 근본 뜻은 헤아려 가야겠지요”
“깊으신 뜻 명심하겠습니다”

신문에 나지 않는 이런 왕래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어딘가에서 있을 거라 믿는다. 눈만 뜨면 부정과 부조리가 우리의 눈과 귀를 더럽하고 차마 가라앉은 마음으로는 접할 수 없는 의혹과 비리가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언젠가는 서로 마음을 나누는 정치풍토와 사회평화가 이루어지리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을 밟고 사는 우리 모두가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서로 신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장면이다.
하루는 제자인 자공이 물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 왈, “양식이 족하고 병력이 족하고 백성이 신뢰하면 그게 바로 정치다. 부득히 셋 중에서 하나를 빼야한다면 병력이다. 부득히 남은 둘 중 하나를 또 빼야한다면 양식이다”

이렇듯 양식과 군사가 족할지라도 백성이 신뢰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나라가 아닌 것이다. 사회의 결속과 화합을 원한다면 믿음을 주어야 한다.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정치인은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꾼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오랜 나라이면서도 정치인이 국민의 충복이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겸손함을 잃지 않는 나라들이 유럽에는 많다. 자전거를 타고 시민들과 함께 국회에 출근하는 의원들도 있다. 시장 재임 시절 판공비 중 아주 적은 금액을 가족의 편의를 위해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자 시민 앞에 사과하고 공직을 사퇴한 총리 내정자도 있었다. 초강대국 미국의 작은 주 출신 하원의원 중에는 회기 중에 숙식비용을 줄이려 의사당 한 켠에서 새우잠을 자는 사례도 있다고 해외 뉴스에서 보았다. 그들은 대신 옆구리에 항상 낡은 서류가방을 끼고 다니면서 지역구 주민들의 민원을 해소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지 않는 직업을 묻는다면 단연 정치인이 맨 꼭대기에 자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신의 뿌리는 세월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오래 된 것일수록 바로잡기 어렵다. 내 집 옆을 흐르는 도랑물이 회색으로 변한다면 그 상류 어느 지점엔가 검은 먹물이 떨어진 것이다. 공인의 언행은 장막 뒤에 가릴 수가 없다. 언제 어디서든 지켜보고 있는 눈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신뢰는 쌓기가 힘들지만 쌓은 뒤에는 잘 무너지지 않는다.
2020년 새해에는 늘 즐겁고 따뜻한 뉴스들만 흘러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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