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북 신전에서 태어나 효충으로 시집가어릴 때 일본 살아 우리말 다소 어눌잘 먹고 젊어 고생 안 해 건강 유지남과 다투지 않고 베풀면서 살고 싶어

나이를 잊어버린 천진한 표정의 할머니가 젊은 6,70대 아우들과 환한 미소로 함께 공부하는 곳이 있다하여 찾아가 보았다. 원도심 가운데 있는 중앙동 주민센터 2층, 매주 두 차례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이면 2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 서예 공부를 한다. 효천 황덕선 선생이 지도하는 서예반의 학생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할머니 한 분, 꼿꼿한 자세에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 소녀같은 모습의 김금수 할머니이다.

누가 93세의 할머니로 볼까. 얼굴의 주름은 세월의 풍상이어서 비록 숨길 수 없다지만 발그레한 볼에 인자한 눈웃음은 우리가 항상 가슴 속 이미지로 간직하고 있는 고향의 어머니 모습 바로 그 자체이다. 동면 금산마을에 살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서예교실에 나오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너무 즐겁다면서 오히려 쉬는 날이 아쉽다고 이야기하는 할머니, 녹천(綠泉), 초록의 샘이라는 호(號)처럼 먼 과거 아직 소녀이던 그때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 하다.

지도 선생님인 황덕선 원장의 말처럼 아직도 남의 신세를 지지 않고 자신이 먼저 손을 내미는 '통 큰 할머니'의 올해 소망은 역시 늘 자신이 해 왔던 "베풀고 사는 인생"이라신다. 인터뷰 김진아 기자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세요.
- 고향은 상북면 신전이랍니다. 제법 부농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당시 국민학교 들어갈 무렵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학교를 다녔어요. 어릴 때 일본에 상다 보니 한국에 돌아와서도 우리말이 쉬 입에 붙지 않아서 많이 놀림을 받았지요. 지금도 가끔 말투 때문에 오해받는 일이 있습니다.

▶결혼은 여기서 하셨나요?
- 아랫동네인 소토리 정씨 집안으로 시집왔어요. 당시 18살이었지요. 시댁도 상당한 대농이라 먹고사는 것은 걱정을 안 해도 되었지요. 얼마 전까지 축협장을 지낸 정우영씨가 시가의 동생뻘이지요. 남편은 농협에 오래 근무했는데 중간에 일이 잘못돼 서울로 전출가게 되어 한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어요.

▶언제 다시 양산으로 오시게 되었나요.
- 객지생활을 접고 내려온 지가 한 20년 되었네요. 남편 퇴직후 오게 되었는데 3년 전에 돌아가셨지. 나보다 한 살 위였으니까 90이 되도록 사셨으니 장수한 거지. 원래 건장한 양반이라 큰 병치레는 없었어요. 함께 산 햇수가 72년이었으니 요즘 젊은이들은 생각도 못 하겠지요.

▶자녀는 어떻게 두셨는지?
- 아들 둘과 네 딸을 낳았는데 딸자식 하나는 먼저 여의었어요. 큰딸은 교육자로 양산초등학교 교장을 지냈어요. 퇴직한 뒤에 진주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노인네 생활비라고 용돈을 넉넉하게 보내 주고 있습니다.

▶서예를 하고 계신 이유가 있는지요?
- 일제시대 국민학교에서 처음 글씨를 접했는데 저한테 맞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젊어서는 도통 시간을 못 내다가 양산에 내려와서 70세가 된 후에야 다시 붓을 쥐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9년 전인가 이마트 문화센터에서 황덕선 선생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문화교실 회원들이 잘 대해 주어서 아주 재미있게 한나절을 보내고 간답니다.

▶아직도 겉으로는 정정하신 것 같은데 건강은 어떠세요?
- 원래 체질이 잘 먹었어요. 그리고 나름 안정된 집안에서 고생 안 하고 살아서 그런지 오래 사는 것 같아요.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걸어다닐 때 무릎이 아프긴 하지만 이 나이에 그 정도도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직도 시장에 가서 필요한 것도 사고, 겨울에는 김장도 직접 담궈서 먹어요.

이 대목에서 황덕선 선생이 "얼마나 정정하신지 한번은 원동 배내골까지 버스를 타고 다녀 오시기도 했더래요. 고향의 강산을 둘러보는 일종의 투어를 한 셈이지요"라고 거들었다.

▶서예교실에 나오지 않는 날은 어떻게 보내세요?
- 일요일에는 교회 나들이를 갑니다. 서예가 없는 월·수·금요일에는 마을 경로당에 가서 고스톱을 치면서 다른 할머니들과 놉니다. 하루하루가 재미있어요.

▶늘 주면에 베풀고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 이만큼 살았는데 무엇이 아쉽겠어요. 내가 가진 것들을 모두 나누고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이지요.

또 황덕선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매년 생신 때마다 회원들한테 식사를 대접하세요. 사정이 있어 참석 못하는 사람에게는 따로 봉투에 돈을 넣어 드리기도 한답니다. 그러면서 늘 이게 마지막이야 하고 말씀하시지요."

▶경자년 새해가 밝았는데요, 할머니 올해 소망이 무엇인가요?
- 살아있으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만 해도 행복해요. 나야 보잘 것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가진 것을 서로 나눈다면 세상은 훨씬 더 살 만한 곳이 될 겁니다. 우리가 베푸는 것은 또다른 베풂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당장 보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일 겁니다. 주위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베풀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인터뷰 하는 내내 할머니는 홍조를 띠며 수줍어했다. 특별히 큰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혼자 드러내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라고도 했다. 인자한 두 눈을 보며 평생을 마음의 빚 없이 살아온 자연인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간 것은 기자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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