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위기의 때(critical time)가 있다. 중국의 1인자 시진핑에겐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아니 이제 시작일 뿐이고 점점 더 험악해질 것이다. 첩첩산중에 일모도원이다.

시작은 끝이고, 끝은 시작이다. 그걸 우린 순환이라고 부른다. 인생 한 갑자를 돈 나이인 회갑쯤 되면 그런 순환의 이치를 다들 체감하게 된다. 회고해 보면, 전성기가 곧 내리막의 개시였고 끝이 없을 것 같던 바닥이 바로 반등 포인트였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2018년 봄에 공식적으로 권력 지존이 되었다. 그는 당 헌장에 자신의 이름을 딴 사상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삽입했고, 종신 집권 구상을 제도화했다. 집단 지도체제를 무력화시키고, 격대지정(隔代指定)이란 후계자 배양 불문율도 무시했다. 권력 지존. 중국 현대사 최후의 지존이었던 마오쩌둥 이후 사라졌던 절대 권력이 되살아난 것이다. 중국 정치는 40년 만에 후퇴했다. 

인생의 최 정점에 선 시진핑은 안팎으로 난제를 만났다.  우선, 미국과의 무역 분쟁이다. 미국은 중국에 1300억 달러를 수출하고 5050억 달러를 수입한다. 그런 무역불균형은 꽤 오래 되었다. 물론 글로벌 생산 체인이란 구조의 문제이고, 중국의 흑자는 다시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것으로 돌고 돌지만, 빅 바이어는 언제든 클레임을 걸 수 있다. 다만 숫자에 밝은 트럼프 대통령의 카드가 상황을 좀 더 고약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트럼프의 개성이 아니더라도, 패권이란 언제든 게임의 규칙을 변경할 수 있는 힘이다.

당장은 무역과 기술 문제지만, 다음은 환율을 포함한 금융 문제일 테고, 그 다음은 군사적 긴장일 것이다. 시작은 무역이지만 결국 미 중 간의 패권 다툼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반복되어온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국 사이의 경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 한다. 그리고 이 트랩엔 시진핑 스스로 서둘러 빠져든 경향이 있다.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과 그가 추종했던 덩샤오핑은 실용주의자들이었다. 대중을 동원하고 선동적인 언어로 혁명을 외치는 유형이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신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덩샤오핑은 대외정책에서 도광양회의 자세를 견지하고 패권을 서둘러 추구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힘 자랑과 돈 자랑을 할 만하게 되자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조심스런 행보보다 마오쩌둥의 허풍과 기개를 흉내 내고 있다. 성실하게 모으고 겸손하게 참아온 '덩 스타일' 보다 배포 크고 기세 좋은 '마오 스타일'이 더 코드에 맞는 것이다. 허풍과 낭만, 멋있어 보인다. 다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다음, 홍콩 문제다. 홍콩에서 거대한 자유화 시위가 발생했다. 750만 인구 4분의 1이 주말 시위에 참여했다. 10대 중고생을 포함한 수백 명의 학생들은 화염병으로 무장하고 대학 캠퍼스를 보루로 마지막까지 버텼다. 그리고 그 끝머리에 있었던 기초의회 선거에서 반중 범민주 세력이 의석 80%의 압승을 거뒀다. 주말 시위는 반년이 넘도록 아직도 진행 중이다. 

홍콩 시위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뿌리 채 흔들고 있다. 일국양제는 1997년 홍콩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는 날로부터 50년 동안 중국과 홍콩이 각자의 제도를 유지하며 발전하자는 구상이다. 상호보완 하다보면 결국 윈윈 하게 될 것이고, 50년쯤 지나면 후생가외의 후손들이 더 기막힌 방안을 찾을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 역사 앞에 겸손하고 더는 시간과의 조급한 경쟁을 하지 않기로 한 덩샤오핑의 묘책이었다.

하지만 불과 20년 만에 균열이 생겼다. 일국양제 중 홍콩은 양제 즉 중국과는 다른 자유민주 시스템을 중시하고, 중국은 일국 즉 하나의 중국을 더 중시해 왔음이 드러난 것이다. 홍콩은 자유화 바람으로 중국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대신 오히려 중국화 되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6.4 톈안먼 때처럼 민주 홍콩을 탄압할 수도 없는 일이다. 동상이몽이다. 그런 진상은 일국양제의 최종 목표인 타이완의 정서마저 흔들어, 내년 1월의 총통 선거를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 인기 없다.

세상 이치는 물극필반(物極必返)이다. 사람살이도 예외가 아니다. 시진핑은 문혁(文革)의 광풍에 직면한 10대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천하의 효웅이다. 40여 년 동안 지방과 중앙에서 무려 16번의 관문을 통과한 끝에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 실력과 자질은 검증된 것이다. 이제 과한 성취감과 허영심을 어찌 다스릴 것인가만 남았다. 아니 불안감일 수도 있겠다. 

중국은 위기의 일상화에 익숙한 나라다. 다만 위기의 성격이 변종 진화되고 위기의 강도가 더욱 세질 따름이다. 시진핑이 과연 당면한 위기도 뚝심과 지혜로 수습하고, 실족 않은 채 행보를 계속할 수 있을까. 2019년을 정리하는 대목,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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