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맨, The Irish Man, 2019>

거장 감독과 대배우들의 고별 인사

만 76세의 로버트 드 니로와 조 페시, 79세의 알 파치노가 77세의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 아래 한데 뭉친 것만으로도 전 세계 영화팬들을 흥분시키에 충분합니다. 인생으로 쳐도 죽음을 눈 앞에 둔 막바지일 뿐더러 배우로서의 경력도 종언을 고할 때가 되었음직한 이들은 단순히 나이든 노익장으로 등장하지 않고 섬뜩한 카리스마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우리 영화계에도 이순재(84)나 신구(83)같은 배우가 없지 않고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도 있지만, 나이든 모습을 다소 우화적으로 포장한 이야기일 뿐 드라마의 본질적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요.
아직도 그 얼굴 뒤에 숨겨진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짐작할 수조차 없는 드 니로의 카멜레온 같은 연기, 알 파치노의 우렁찬 보이스가 제대로 빛을 발하는 지미 호파 역, 그런가 하면 늘 속사포처럼 육두문자를 쏘아대는 마피아 졸개 역 전문이던 조 페시가 이제 나이를 먹어 드디어 보스로 등장합니다. 현역 은퇴 이후 수십번의 러브콜에도 꿈쩍 않던 조 페시가 끝내 스콜세이지의 청을 거절하지 못해 촬영장으로 나오게 됐다고 한다. 이 배우들을 모아서 위대한 콜라보레이션을 완성한 것은 결국 스콜세이지 감독입니다. 뉴욕 출신으로 우디 알렌과 더불어 뉴욕을 소재로 한 영화에 천착해 온 스콜세이지는 평범한 뉴요커들의 사랑과 일상을 담아내는 알렌과는 달리, 뉴욕이라는 도시가 성장하기까지의 흑역사와 이민자들의 삶을 주요 오브제로 채용해 왔습니다.
<아이리시맨>은 실존 인물들을 다룬 3시간 반 짜리 영화입니다. 그래서인지 장편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요. 대배우들의 피날레를 의미할 수도 있는 작품의 형식으로서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 프랭크 ‘아이리시맨’ 쉬런은 2003년 임종을 앞두고 당시 유명한 트럭 노조 지도자 지미 호파를 죽인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친한 친구이자 노조 활동 동지이며 경호원으로 함께 다녔던 호파를 암살한 것은 그저 “사무적인 것”이었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동안 호파는 공식적으로 실종 상태였습니다.
영화는 트럭 운전기사였던 프랭크가 어떻게 해서 청부살인업자가 되고 호파와 함께 노조 지도자로 활동하게 되었는지 과정을 따라갑니다. 젊어서 우연히 만난 마피아 보스 버팔리노에 의하여 해결사 역할을 하다가 결국은 냉혹한 킬러로 발전한 프랭크는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속죄나 참회보다는 그저 일처럼 살인을 저질렀다는 냉정함을 드러냅니다. 실제 인물 프랭크가 190cm 이상의 장신에 거구인 것을 알게 된 로버트 드 니로는 예의 메쏘드 연기로 배역을 소화합니다. 드 니로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거지요. 그와 함께 모처럼 중후한 보스 역을 맡은 조 페시의 호연에 비하면 알 파치노의 지미 호파는 조금 아쉽습니다. 파치노의 트레이드 마크인 ‘버럭’하는 스타일로 시종일관하니 다소 실망스런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카리스마에 빛나는 대배우들이 퇴장하고 나면 어떤 배우들이 빈 자리를 채우게 될 지 알 수 없겠지요.
이 영화의 남다른 면은 또 있습니다. 자주 등장하는 회상 장면에서 보는 배우들의 젊은 외모에 감탄을 금할 수 없는데 이런 효과가 분장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기법으로 작업한 결과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런 기법은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2008>에서 이미 도입되었다지요. 또하나는 헐리웃의 대형 영화사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넷플릭스가 1억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하여 직접 제작 배포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동안 넷플릭스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영화를 제공했지만 이번만큼은 내부 논의를 거쳐 일반 영화관 개봉을 일부 허용했답니다. <편집국장>

저작권자 © 양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