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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칼럼] 겨울의 문턱에서

강원 북부 산간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지난 주말 미시령에 30.5cm, 진부령엔 11.7cm를 기록하는 폭설이 내렸다. 강원 산간지역에 하얗게 내린 눈 사진이 신문 1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올핸 첫눈이 다른 해보다 일주일쯤 일찍 내렸다고 한다. 지난여름 더위가 비교적 심하지 않은데 따른 계절 순환의 순리적 기후변화 현상인 것 같다. 늦가을 비가 질척질척 많이 내렸었는데, 비와 달리 눈이 내리면 사람들의 마음이 웬지 들뜨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의 마음도 무언지 모르게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첫눈을 서설(瑞雪)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입동(立冬)이 지난 달 8일이고, 소설(小雪)이 지난지도 열흘이 다 되었다. 이제 본격적 겨울로 들어선 것이다. 미처 못한 김장도 서둘러야 하고 이것저것 월동준비를 모두 끝내야 한다.
없는 사람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는 말이 옛 부터 전해 온다. 요즘은 시골에선 ‘동냥아치’라 일컫는 거지를 구경하기 어렵지만, 도시에선 아직도 이에 해당하는 노숙자들을 어렵자니 볼 수가 있다. 나라가 아무리 잘살아도 어떤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빈한한 극빈자, 가진 것이 없어서 남의 것을 얻어먹고 사는 사람은 있었다.

번영사회, 호의호식하고 사치와 부를 누리는 오늘날의 우리사회에도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하고’ 일가족이 한꺼번에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빈번하다. 어떤 사람은 팔자가 좋고 무슨 복을 타고 낫는지 돈더미에 묻혀 몸살을 앓는가 하면, 아파트를 수백 채씩 소유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생활의 평등을 염원했지만, 소유의 평등을 위해 피도 많이 흘렸지만 어쩔 수 없는 근본모순으로 오늘도 불평등은 건재하다.

완전한 평등이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다 안다. 알면서도 애타게 소원하며 목이 마르게도 부르짖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하늘을 날기를 소원하고 달나라에 가기를 꿈꾸었던 인간들은, 하늘을 날고 달나라의 흙을 밟았지만, 그들 앞에는 무한대의 또 다른 하늘과 무수한 또 다른 달나라가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한가지의 평을 극복하면 두 가지의 불평등이 다가선다. 하늘을 날면 더 큰 공간이 펼쳐져 있고, 달을 정복하면 저 멀리 헤일 수 없는 혹성들이 막막한 우주공간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18세기 들어 인간들은 증기기관을 발명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 초 증기기관차를 만들고 1829년에는 시속46km로 주파하기에 이른 것이다. 증기충격에 의한 거대한 터빈들의 회전과 특히 증기기관차의 거대한 몸체와 괴력 앞에 인간들은 왜소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문명과 편의(便宜)는 과욕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의 탐욕은 인간 본성의 말살이라는 것이다. 탐욕을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탐욕은 곧 범죄인 것이다.

아메리카 상업자본주의와 군사패권주의의 끝없는 탐욕은 바야흐로 세계경제와 국제평화의 겨울을 불러오고 있다. 트럼프의 동맹안보를 미끼로 한 군사 마케팅전략은 아메리카 폭력자본의 본 얼굴 그대로이다.

겨울에 내리는 하얀 눈은 평등과 평화를 상징한다. 올 겨울 이 땅에 내리는 눈송이들은 유난히 추위를 타는 한반도의 따뜻한 평화의 이불이기를 기원한다.

양산신문  ysnews0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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