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종 임금이 한가해서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일관(日官)을 들라고 하였다. 일관이 임금 앞에 나아가 부복하자 임금은 이렇게 말했다. "사주팔자로 사람의 운명을 안다고 했는데 전국에 과인과 사주팔자가 똑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꼬? 내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니 전국에 지시하여 과인과 똑 같은 사주를 지닌 사람을 모두 조사해서 불러 들이도록 하라." 

흔히 사주팔자(출생년월일시)가 같으면 살아가는 모습도 똑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인간의 운명을 보는 학문에 깊은 지식이 없어서다. 명리학을 공부할려면 물상법도 같이 공부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사주가 똑 같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다르다. 

특히 명리학, 물상법 등 운명학은 대가(大家)의 제자로 입문해 배우지 않으면 터득하기 어렵다. 일종의 불도와 같은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사주팔자가 같아도 각자 살아가는 모습은 어떻게 다른지 사례를 보자. 성종 임금의 지시에 따라서 조사해 보니 마침 한 사람의 중년 과부가 있어서 임금 앞에 불러 왔다. 임금은 앞에 와 엎드려 있는 여자에게 물었다. "듣거라, 네 사주팔자가 과인과 같다고 하니 네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의 일들을 소상히 말하여라!" 
"예, 전하 빠짐없이 아뢰겠나이다. 소인은 옛날 어릴 때는 여종의 신분이었는데 뒷날 돈을 내고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평민으로 면천되었나이다. 그리고 혼인을 하였으나 얼마 후에 남편이 죽고 과부로 살아왔사옵니다."
 "그렇다면 몇 가지 알아 볼 것이 있느니라." 하고 임금은 말한 후 여자가 여종의 신분에서 면천된 때를 물어 추적하니 임금인 자신이 등극하여 왕위에 오른 바로 그 해의 그 날과 일치했다. 또한 여자의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된 시기를 물어서 맞추어 보니 앞서 사망한 자신의 중전 공혜왕후 한 씨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 날이었다. 임금은 감탄을 하면서 "이렇게 일치할 수가 있나 그 참 신기한 일이로다" 하고는 다시 말했다.
 "여인은 듣거라. 듣고 보니 제반 사정이 과인과 매우 비슷하나 다만 과인은 수 백명의 후궁을 거느리고 매일 밤 예쁜 여자의 맨몸을 안고 속살을 맞대어 잠자리를 즐기거늘 너는 과부의 몸으로 밤에 홀로 외로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일테니 그것만이 과인과 다른 것 같다. 사주팔자가 똑 같은 사람으로서 내 연민의 정이 이는구나. 과인과 사주팔자가 같다는 인연도 있고 하니 하룻밤 그 고독을 달래 줄 수도 있겠느니라." 

이 말에 과부는 입가에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지엄하신 전하의 앞이라 바른대로 아뢰겠나이다. 소인도 본시 성품이 풍정(風情)을 좋아해 남편이 살아 있을 때도 하룻밤에 한 번 잠자리로서는 결코 만족해 하지 못해 남편이 몹시 힘들어 했사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임금을 한번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전하! 옛날 중국 무후(武后)는 일찍 과부가 된 후 많은 남첩(男妾)을 거느렸다고 들었습니다. 소인도 과부가 된 이후로 수십 명의 남자를 사귀어 밤마다 교대로 불러 들여 상대하면서 밤을 새워 살아가는 것을 낙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사옵니다. 그러므로 과부라도 결코 고독하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반측(이리뒤척 저리뒤척)하는 일은 없사오니 가엽게 여기지 마옵소서. 소인이 남편이 없어도 여러 남자들과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나 전하께서 중전마마가 안계셔도 여러 궁녀들과 즐겁게 살아가시는 것도 사주팔자가 전하와 소인이 일치하여 모든 부분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사옵니다. 황공하옵나이다." 

여인은 이와 같이 말하고 웃으니 듣고 있던 신하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성종 임금도 크게 한바탕 웃고는 말했다. "그랬었구나. 남녀간에 교접해서 정감을 나누며 재미를 보는 일에는 남자중에 과인이 있고, 여자 중에는 네가 있었구나. 진정 보기드문 희한한 일이로다!" 임금은 과부에게 많은 선물을 주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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