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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의 문화산책] 임진왜란 창의 의사 박홍남
  • 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 승인 2019.11.2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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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지역의 명동근린공원에서 열린 '2019웅상가을 국화향연'을 구경하고 공원을 둘러보았다. 명동공원은 야외무대, 쉼터, 로봇, 어린이 놀이터와 놀이기구, led 장미꽃 공원, 포토존, 연못, 화장실, 주차장 등이 잘 갖춰져 있었다. 공원 뒤로 약간 떨어진 곳에 삼한아파트가 있어 명동공원은 아파트 주민들이 이용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소나무 숲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멀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잘 정비된 묘역이 나타났다. 울산 박씨의 후손을 설명하는 묘역 안내비를 읽어보니 흥미로운 내역이 적혀 있었다.

울산 박씨 군수공파(郡守公派) 내력을 설명하는 비석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동한 인물들이 나와 있었다. 훈련원봉사 흥려박공지묘(訓鍊院奉事 興麗朴公之墓)라는 비석과 박홍남(朴弘楠)의 묘소가 있었다. 그 옆으로 무안군수 울산박공 지영지묘(務安郡守 蔚山朴公 之榮之墓)라는 비석과 박지영(朴之榮), 박홍신의 묘소가 있었다. 

박지영 무안군수는 어린 시절부터 효성이 지극했고, 글재주와 무술에 뛰어나고, 도량이 넓고 용맹스러웠다고 한다. 조선 명종 때 벼슬길에 올라 수우후와 무안군수를 역임하였다. 당시 관리들이 파당을 이루어 당파싸움을 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관직을 사임하고 1560년경 이곳 명곡(명동) 마을에 정착하였다. 후손들에게 학문을 닦고, 무예 연마를 열심히 하도록 강조하며 은퇴생활을 하다가 1590년에 타계하였다. 부인은 동래 정씨로 부친은 현감 덕령이었다. 

훌륭한 인물 아래서 국가에 충성스럽고 부모에 효도하는 인물이 나오게 마련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박지영 무안군수의 후손들은 선친의 평소 가르침대로 의병으로 출전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군수공파 비석에 의병으로 활약한 인물로 아들 박홍남, 조카 박홍춘(朴弘春), 사위 김해 김응방(金應邦), 생질(甥姪 : 누이의 아들) 이겸수(李謙受) 등의 이름이 나왔다.

임진왜란 창의 의사(倡義義士)인 홍남은 자는 경형(景亨), 호는 설망헌(雪望軒)으로 무안군수 지영(之榮)의 맏아들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촌형 홍춘, 사촌동생 홍신 등과 함께 창의하여 운문산의 의병진에 합류하였고, 1592년 6월 울산과 경주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의병들이 모여 결진을 맹세했던 경주 문천회맹(蚊川會盟)에 참가하고 이후 남산전투에 이어 영천성 수복전과 경주부성 탈환전에 큰 공을 세웠고 멀리 안동과 당교전투에도 참전하여 용전분투하였다. 

1597년(선조30) 정유재란 때 팔공산성의 세 번째 회맹에 참가하고 도산성 전투 때는 조선군 도원수 진영에 들어가 전도(前導)하며 큰 공을 세웠다. 벼슬은 전력부위(展力副尉)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에 이르렀다. 명곡파 후손들의 위패를 모신 재사(齋舍)는 귀후재(歸厚齋)다.

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ysnews0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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