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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판단은 신중하게, 결단은 신속하게
  •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 승인 2019.11.1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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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을 때까지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그것은 바로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그만 둬야 할까 그만두지 말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전연 해보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신속히 가야할 방향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랜시간을 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어떤 일을 선택하기까지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고민도 한다.

하지만 검토는 오래 하지만, 일단 결정이 나면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판단에서는 매우 오랫동안 고민하지만, 결단은 신속하게 한다」는 것이 나의 처세술이다. 판단과 결단은 언뜻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매우 크다. 그것은 바로 판단에는 정답이 있어도 결단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결단이 행동으로 옮겨지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결단을 할 때까지는 판단을 두고 오랫동안 고민한다. 「판단」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엇비슷해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리는 것이다. 아무리 여건을 고려하고, 이해득실을 심사숙고 해도 어느 쪽이 나에게 이득을 가져 오는지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미루기만 하는 것은 자칫 더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신속함」이다.
미래가 불확실한 요즘 같은 시대에는 경영자 쪽이든 직장인 쪽이든 언제 어느 때든 신속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어떤 사업을 선택할 때는 당연히 사전에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통계나 자료들은 해당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저울판에 얹혀 놓고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하여 판단하는 용도로 활용되지만, 최종적인 판단을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결국 조직의 운명을 결정하는 몇몇 경영진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때 경영진의 판단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래도록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경영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즉시 결단을 내리는 능력이 요구된다.

오늘날처럼 가치관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고수해 봤자 도태되기 십상이다. 한 사례를 보자, 일본의 전국시대는 전형적인 하극상(下剋上)의 시대였고, 변화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챙기기에만 급급한 권력자들은 짧은 기간에 권력과 나라를 빼았기고 말았다.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 인물은 대포나 소총 등의 신무기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도입한 '오다 노부나카'였다. 그는 '야마오카 소하치'의 저서 「대망(大望)」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기반을 확립한 안정의 시대에는 판단기준이 180도 달라진다. 사람들의 가치기준은 변화가 없고, 기존의 방식을 존속시키는 쪽을 선택한다. 이미 새로운 권력이 구성되었고, 그 권력을 대대손손 자신의 아들에게 승계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하루가 멀다하고 끓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변화의 시대에는 변화의 물결을 쫓아가야 하고, 안정의 시대에는 안정의 물결을 쫓아가야 한다. 이런 원칙을 두고 선택을 하면 결단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다. 물론 어느 시점에서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포기하는 시점은 어디인가? 구덩이를 10m∼20m 파다보면 누구나 자신이 투입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미련을 가지게 된다. "앞으로 1m만 더 파면 나올지 몰라"하는 식으로 자기 최면에 걸린다. 여기에는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하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열심히 팠던 구덩이를 어느 시점에선가 과감히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계속 팠는데 '금(金)'이 나오지 않을 확율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때 1m 앞에서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경영자가 진정한 승리자다.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ysnews0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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