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규(盤珪, 1622~1693) 스님은 깨달음이 높은 경지에 이른 선사이다. 스님의 명성만큼이나 문하에 제자들이 많았다. 

많은 스님들이 함께 살다 보니, 다양한 스님들이 있었다. 반규 스님 제자 가운데 물건을 훔치는 스님이 있었다. 

한번은 도둑 스님이 법회 현장에서 물건을 훔치다 붙잡혔다. 여러 스님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도둑질하는 스님을 내쫓아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런데 반규스님은 한 마디로 딱 잘라서 거절했다. 스님들은 반규스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얼마 후, 반규스님이 큰 법회를 주관해 법문하는 일이 있었다. 수많은 스님들이 모여 반규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었다. 

모든 이들이 설법에 정신을 쏟고 있을 때, 도둑 스님이 또 물건을 훔치는 일이 발생했다. 현장에서 범행을 들키게 되었으니, 도둑 스님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에도 스님들이 반규스님에게 항의했다.

"스님! 스님도 보셨듯이 저 도둑질 하는 스님은 한두 번도 아니고, 우리도 곤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 스님을 내쫓아야 합니다. 이번에도 스님이 저 도둑질하는 스님을 내쫓지 않으면, 우리가 떠나겠습니다." 이렇게 강력히 항의하며, 스님들이 짐을 싸서 나갈 차비를 하였다. 

이때 반규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대들이 모두 떠난다고 해도 나는 저 한 사람만을 남겨 놓을 것이다. 사실 그대들은 똑똑해서 옳고 그름[是非]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지 않은가?! 너희들은 이 절을 떠나 어디를 가더라도 수행할 수 있지만,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저 사람은 내가 여기서 쫓아내면 어느 누가 받아주겠느냐? 그래서 그대들이 모두 이 절을 떠난다 해도 나는 저 스님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반규스님의 이 말을 듣고 도둑 스님은 깊이 참회하고 다시는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해야 합니다.'는 취지로 집단행동을 하였다. 

그런데 당시 학장 스님은 한사코 반대했다. "자네들은 이제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스님이 여기서 구제받지 못한다면, 어디 가서 구제를 받겠는가? 자네들이 그 스님을 불쌍히 여기고 잘 돌봐주어라."

그래도 우리들은 강경하게 나왔고, 학장 스님이 눈물까지 보이고야 데모가 철회되었다. 

30년이 넘은 일인데도 생생히 기억된다. 필자도 오랫동안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나름대로 교육관이 있다.

곧 '엄격한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한번은 용서해 기회를 주자!'이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인지라 누구나 실수를 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상황에 따라 용서와 기회를 베풀면 어떨까 싶다.

 

저작권자 © 양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