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규동 별서의 소한정에는 돌로 만든 바둑판이 남아 있다. 자연석 돌에 새긴 바둑판은 가로 19줄, 세로 19줄, 361로 줄이 희미해졌지만 아직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소한정 감나무 밑에 자리 잡고 있는데, 바닥의 천연암반에 붙어 있어 100년이 넘은 세월 동안 보존되어 왔다. 우규동의 증손자인 우종신 전 양산농협 상무는 재단법인 한국기원의 직원이 최근 서울에서 내려와 소한정의 돌 바둑판을 사진 찍어갔다고 필자에게 정보를 알려주었다. 소중한 문화유산인 돌 바둑판은 앞으로도 잘 관리하여 영원히 보존되어야 하겠다.

전설 속의 상산사호에 보면 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옛날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속 깊이 들어갔다가 우연히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길이 점점 넓어지고 훤해지면서 눈앞에 두 백발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나무꾼은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다가 문득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세워 둔 도끼를 집으려 했는데, 도끼자루가 썩어 집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마을로 내려와 보니 마을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한 노인을 만나 자기 이름을 말하자, 노인은 "그분은 저의 증조부 어른이십니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한자어로 '선유후부가설화(仙遊朽斧柯說話)'라고도 한다.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전설로도 일부 전해지고 있다. 황해도 평산읍(平山邑)에 가마골, 즉 부동(釜洞)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선암(仙巖)과 난가정(欄柯亭)이 있다. 

옛날 신선들이 이곳에서 바둑을 두었다고 전한다. 6세기경 간행된 『술이기(述異記)』에는 중국 진(秦)나라 때 왕질(王叱)이라는 나무꾼이 절강성 상류 구주의 석실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는 서두로 시작되는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으며, 에버하르드(Eberhard, W.)가 채록한 중국 민담 중에도 우리나라의 것과 공통된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이런 설화는 중국 도교의 신선 사상에서 비롯되어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의 바둑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으며 왕이 바둑에 탐닉하여 나라를 망치기도 하였다.

백제의 개로왕(455~475)은 바둑을 잘 두기로 유명하였다. 장수왕은 백제를 염탐하기 위해 승려 도림을 첩자로 보냈다. 도림은 개로왕을 찾아가 고구려에서 죄를 지어 탈출했다고 속였다. 

바둑을 잘 두던 도림은 개로왕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개로왕은 도림의 꾐에 빠져 급하지도 않은 방대한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가 재정을 낭비하였으며 귀족세력들을 배제한 왕족 중심의 집권체제를 추구하여 백제 내부의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계획적인 침입을 받고 성 밖으로 도망치다 붙잡혀 죽었으며, 위례성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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