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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칼럼] 통도사 개산대재의 볼거리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 문수보살이 나타나 "남쪽 축서산(鷲栖山 : 영축산의 옛 이름) 기슭에 독룡(毒龍)이 거처하는 신지(神池)가 있는데, 거기에 사는 용들이 독해(毒害)를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그대가 그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이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삼재(三災 : 물, 바람, 불의 재앙)를 면하게 되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천룡(天龍)이 그곳을 옹호하게 되리라." 라고 알려주었다. 

자장율사는 귀국하여 나쁜 용들이 산다는 못에 이르러 용들을 위해 설법을 하여 제도하고 못을 메워 그 위에 금강계단을 쌓았다. 

스님에게 항복한 독룡은 모두 아홉 마리였는데, 한 마리의 눈먼 용만은 그곳에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하였으므로 스님은 그 용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머물도록 했다고 한다.

소백산과 연결되는 선달산(仙達山)이라고 있다. 선달이란 이름은 선도의 무리라는 뜻이다.
배달겨레의 그 배달이 바로 선달이다. 선달산 남쪽에 부석사가 있다. 부석사 창건 설화에서는 선달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진다. 

의상이 부석사 터를 정하고자 했는데 사교의 무리 500여 명이 방해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름 아닌 선도의 집단이다. 선산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의상대사가 배를 타고 당나라로 건너갔을 때 양주의 한 집에 머물렀는데 그 집 딸 선묘(善妙)가 의상을 사모하였다. 의상대사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자 그 소식을 들은 선묘낭자가 의상을 위해 준비했던 법복과 그 밖의 물건들을 함에 가득 넣어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상의 배는 멀리 떠나고 있었다. 

선묘낭자는 바다 속에 몸을 던져 용이 되었다. 선묘가 배를 수호하여 인도하니 의상의 배는 무사히 신라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의상대사는 사찰을 창건하라는 왕명을 받고 봉황산에 갔는데 그곳에 먼저 자리잡은 토속 종교를 믿는 주민들 때문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때 선묘용(善妙龍)이 나타나 큰 바위를 공중으로 세 차례나 들어 올렸다 놓는 신비한 힘을 보여주었 토속신앙을 갖고 있던 주민들은 더 이상 방해를 하지 않게 되었다. 부석사(浮石寺) 뜬 바위(浮石)라는 절 이름은 갖게 되었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종교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유문화와 토속신앙은 구석으로 밀려나고 외래문화와 종교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속인들에 의해 태백산과 마니산 등에 고유 신앙이 지탱되고 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는 선도 사상, 용과 산신을 숭배하는 토속종교가 있었다. 통도사와 부석사의 창건 설화에서 우리의 토속신앙과 불교의 마찰을 볼 수 있다.

양산신문  ysnews0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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