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손꼽히는 차문화학 연구자 박영식 교수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 차 생산 기록 확인

조선시대에 양산에서 차를 생산했다는 기록이 본지에 전달됐다.

본지 27일자 '다방마을 야생 차나무 대량 서식' 제하의 기사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차문화학 연구가인 박영식 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 교수가 본지에 관련 자료를 보내왔다.

박 교수는 1일 자료에서 "'조선시대 차나무 공납지가 여럿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양산의 공납물품에 차나무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는 보도는 정확하지 않다"며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고사촬요(1674), 대동지지(1864), 여재촬요(1894) 등 세종실록지리지 이후에 편찬된 조선시대 전국 자리지에는 양산에 차가 생산되는 것으로 기록 되어 있고 이미 잘 알려진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1460년 이전 작성 추정)에도 양산에 차를 생산하는 동을산 다촌이 있었고 북쪽 거화군 경계에 평교다촌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현전하는 관련 전거가 아직 미발굴 된 것이 많아 단정적인 결론을 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으나 여러 근거 자료를 통해서 연구된 바에 의하면 조선초기 전국 지리지에 그 지역의 물산이나, 토산으로 물종이 기록된 곳에서 해당 물자를 주로 관비생산(官備生産)으로 생산해 절차에 따라 공납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따라서 조선시대에 양산지역에 차가 생산되지 않았다던가, 차를 공납한 사실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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