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는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되면서 이른바 빅뱅의 시대를 맞이하여 기업들은 대변동의 시대에 접어 들었다. 국가간이든, 기업간이든 상대와 싸워서 이겨야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양쪽이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국가간에도 힘이 약하면 정복당하고, 힘이 강하면 정복할 수 있는 것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줄곳 있어 왔다. 

기업의 경우 자동차업계의 사례를 보자. 크라이슬러와 다임러(벤츠)의 합병, BMW의 롤스로이스 흡수 합병, 다임러와 닛산(日産)디젤의 제휴, 포드의 볼보승용차 부분 흡수, 닛산자동차와 르노의 제휴 등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러한 업계의 양상을 면밀히 생각해 보면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간이든 기업간이든 싸움은 생존을 위해서는 어차피 서로 맞붙어 싸우는 것 때문이다. 

싸움에서 전면적인 공격에는 이기든 지든 양쪽의 손실이 크게 발생하기 마련이다. 「피로스의 승리(로마군에게 일시적으로 승리를 얻었던 고대 그리스 에피로스의 왕)」처럼 손실도 많고, 얻는 것은 적은, 손해 보는 승리를 하는 경우는 세계 전쟁사를 보면 대부분 다 그렇다. 그러므로 손자의 병법 중 모공편을 보면 '백전백승'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란 점을 강조한다. 

비록 그렇다 해도 전쟁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기 때문에,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많은 전쟁에서 국가의 흥망은 국력이 좌우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전쟁을 하지 않아도 실제로 교묘한 수단과 방법으로 국력을 확장했던 왕가가 있다. 바로 근세 유럽에서 최고의 가문으로 역사에 기록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Habsbung家)'이다. 이 왕가는 원래 스위스와 알자스의 일부를 지배했던 소제후(小諸侯)였지만,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독일 황제) 자리가 공석이었던 대공위시대(大空位時代)가 20년간 계속되던 1273년, 세력있는 선제후(選帝侯. 신성 로마제국의 선거권을 가졌던 7명의 제후)가 '합스부르크'의 성주인 루돌프 1세를 황제로 추대했다.  루돌프라면 자신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돌프는 선제후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힘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루돌프는 오히려 자신의 즉위에 반대하고, 인정하지 않았던 보헤미아 왕 오타카트 2세를 정복시키고, 혼인을 맺어 보혜미아 왕가의 남자 자손이 끊어지게 되자, 곧 바로 오스트리아를 합병해 버린 후, 교묘한 혼인정책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막시밀리안 1세)은 1477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도모하던 부르고뉴의 「샤를 용담공(勇膽公)」이 스위스에서 패배해 사망하자, 그의 딸 마리아와 결혼하여 그의 유영(遺領) 네델란드와 알자스를 합병했다. 또한 1526년에는 헝거리, 보헤미아 왕 라요시 2세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며 사망하자, 그의 여동생 안나와 결혼한 페르디난트(후에 황제 페르디난트 1세)가 헝거리, 보헤미아의 왕위를 계승했다. 

이렇게 하여 필리프의 아들 카를 5세(에스파냐 왕으로는 카를로스 1세) 시대에 와서 합스부르크家는 독일의 동쪽 절반과 헝거리, 보헤미아, 에스파냐, 부르군트. 네델란드, 남(南) 이탈리아, 시칠리아, 샤르데냐 등 유럽의 약 절반과 신대륙 등에서 군림하는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묘한 방법을 동원한 결혼정책으로 합스부르크家의 융성을 보고 「행복하였구나, 오스트리아여! 다른 이는 마르크(전쟁의 신)로 얻을 것을 너희는 비너스(미의 여신 정략결혼)로 얻었구나」하며 부러워 했다고 한다. 

이것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손자의 말과 일맥 상통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점령한 섬을 우회한 미군의 립프로그(LeapForg) 작전이나 해상수송로 차단, 본토 폭격으로 전투를 계속할 능력을 파괴하는 것 등은 손자병법의 간접전략을 응용한 것이 분명하다. 

일본 격언에 「장군을 쏘려면 말을 먼저 쏘라. 뒷문으로 처들어 가라」와 같은 말이 있다. 손자의 가르침은 국가간의 전쟁에서 뿐만 아니라, 기업활동이나 인간관에서도 통용되는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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