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기록에 없는 다소(茶所) 있었다"
다방동, 통도사의 또다른 다소였을 듯
토지 매입, 표지판 설치 등 보존대책 필요

양산 다방동이 고려시대의 차산지였을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려시대는 한반도에서 차 문화가 가장 융성하던 시기다. 국내 차 연구가들에게서 이 같은 주장이 힘을 얻는다. 이에따른 차나무와 다도 관련 문화 인프라 확보도 기대된다.

일반적으로 차공납은 고려시대 소(所)에서 이뤄졌다. 소는 금·은·철·종이·차 등의 특정물품을 만드는 특수행정집단으로 전업적 생산활동을 하던 곳이다. 그러나 실제 신라때부터 차를 만들어 공납했다는 양산 통도사의 다소촌은 '경상도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박영식 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 예문화와 다도학과 및 한국예다학연구소 교수의 논문 <고려시대 차산지와 공납차 생산에 관한 일고>에 따르면 "차산지에 반드시 다소가 존치되지 않았을 개연성을 보여주며, 실제 고려시대의 차 산지에서는 다소가 없었던 지역이 많이 존재했다"고 밝혔다.

고려시대 양산지역은 '양주'였는데 <통도사사적기>에 다소가 존재했음이 확인된다. 오늘날의 울주군 지역이다. 따라서 고려 양주가 다소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차산지였으며 이는 통도사의 또다른 다소 였지 않을까 하는 추정이 나온다.

차문화에 조예가 깊은 조국영씨는 "다방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연구해봐야 하지만 고려시대 불교가 흥했던 시절 통도사 승려들이 차를 즐겼고 다방동이 연관 있을 것이다"고 했다.

이 같은 내용이 확인되면 양산 다방동 야생 차나무 자생지의 보존을 위한 양산시 차원의 예산 편성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칡넝쿨을 제거하고 차나무 관련 안내판을 세우는 것이 가능해 진다. 향후에는 부지 매입 후 차문화센터 등의 건립도 계획할 수 있다.

현 다방동 지역의 야생차나무 산지에는 토지주가 각각 다르다. 다방동 지역민이 아닌 다른 지역 거주민들이 대부분 소유주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금희 안다방마을 이장은 "마을이 차 문화로 유명해지면 좋겠다. 주민들에게도 이를 교육하고 토지주를 설득해 양산시가 이를 매입할 수 있도록 돕겠다. 관련 문화시설을 건립하자"고 했다.

이용식(중앙·삼성동) 시의원은 "체류형 관광지 조성이 양산에서 가장 필요하다. 문화재만 보러 가는 것 보다 체험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차를 재배하고 그린벨트를 포함한 지역에 차체험관을 지으면 다도문화를 확산시키는 모멘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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