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2배 넓이, 수십그루 확인
양산군지도 '茶方' 표기와 연계 '주목'
차 공납지 확인 필요

야트막한 동산에 야생 차나무가 최소 50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양산 다방마을.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안다방과 바깥다방으로 마을이 두 동강 났다.

고속도로 교각 밑 '굴다리'를 지나면 안다방이다. 이 곳에 들어서면 탄성부터 나온다. 야트막한 산이 주변을 감싸고 그 아래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마을 동산이 새처럼 마을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고 지역주민들은 말한다.

이 곳 다방마을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근 NPO법기도자에서 법기리에서 생산한 찻사발을 양산 문화의 주요 테마로 격상시키는 가운데 찻사발에 타 먹는 '차(茶)' 가 어디에서 생산됐는지 주목되기 때문이다.

이와 궤를 같이해 최근 19세기 말 '양산군지도'가 발견됐다. 이 지도에 따르면 현재의 다방(多芳)은 다방(茶方)으로 표기돼 있다. 이는 이곳 일원에서 다량의 차나무를 재배했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지난 25일 본지는 현장 답사를 통해 다방동에 차나무가 대량으로 서식하는 것을 확인했다. 야트막한 동산에 야생 차나무가 최소 50그루가 무리지어 자생하고 있었다. 칡 넝쿨이 차나무를 가리고 있어 육안으로는 확인이 안됐지만 산을 오르자 곳곳에서 야생 차나무가 발견됐다.

축구장 약 2개 크기의 면적에 높이는 최소 50cm에서 2m의 다양한 크기로 존재했다. 동행에 나선 산주(山主)는 "차나무가 열매를 떨어트려 자꾸만 퍼지고 있다. 칡넝쿨에 둘러싸여도 자생력이 강한 차나무는 살아남는다. 매년 번지고 있다"고 했다.

다방동에 차를 언제부터 재배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 고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이곳 다방골에 조개무덤이 발견되면서 철기시대부터 취락지를 형성했음이 학술 고증 됐다.

조선시대 차나무 공납지가 여럿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양산의 공납물품에 차나무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50년 이상 이 마을에 살았다는 한 주민은 "통일신라시대에 경주에 높은 분들에게 차를 공납하기 위한 공급처였지 않을까 추정된다. 마을원로들도 차방골은 경주와 관련있다"고 했다. 이어서 "차나무 잎이 가장 맛있는 작설차는 5월에 따는데 5월은 농번기다. 농민들이 일이 힘들어 차나무를 베어 버리고 전답으로 활용했다는 어른들 말을 들었다"고 했다.

홍천희 동국대학교 차문화대학 박사는 이에대해 또다른 주장을 했다. "과거 바닷물이 다방골 앞까지 들어왔을 것이다. 우물을 파도 짠물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황산새미는 겨울에 따듯하고 여름에 차가운 좋은 물이 나왔다. 황산새미 물에 차를 끓여서 조선 임금님께 진상했다"고 했다.

또 다른 한 문화전문가는 "역사 고증도 중요하지만 법기도요지에서 만든 찻사발에 황산새미의 물로 다방골 찻잎을 따서 차를 끓이는 스토리텔링을 만들면 지역의 문화자산이 된다. 없는 것도 만드는 게 문화 아니냐"고 했다.

차 문화에 조예가 깊은 조국영씨는 "신라부터 고려까지 차문화가 번성했다. 조선시대에는 즐기는 계층이 극소수 계층이었다. 통도사 인근에 다실이 있었던 것이 문헌으로 확인된다. 다방동에는 안타깝게도 다실 기록은 없다. 그래서 통도사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추정을 할 뿐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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