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동침'이라는 표면적 의미 전에 이 앨범은 다프트 펑크의 음악적 향수이자 고백이다. 그들은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자신들이 좋아했던 20세기 중후반 디스

코 훵크 그루브를 떠올렸고 기꺼이 그것을 자신들 음악에 이식했다. 기억(Memories)에 접속(Access)하기 위한 뮤지션들의 랜덤(Random)한 기용. 하우스 듀오라기 보단 훵크 밴드에 가까운 진용을 갖춘 본작의 타이틀은 대략 이런 의미로 읽혔다.

절제된 샘플링 횟수와 방대한 피처링의 면면. 대비되는 건 앨범 재킷의 반쪽 헬멧만이 아니다. 폴 윌리암스와 칙(Chic)의 나일 로저스 같은 노장들이 퍼렐 윌리암스나 줄리안 카사블랑카와 어울리는 것도 훈훈한 대비요, 디제이 팔콘과 조지오 모로더 같은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나단 이스트, 오마 하킴 같은 재즈 뮤지션들과 호흡하고 있는 것도 아름다운 대비다.

그렇게 다프트 펑크는 정말 밴드가 되어 돌아왔는데, 아무리 그들만의 오토튠과 신시사이저가 트랙 사이사이, 곡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녀도 이 인간적인 소리와 리듬 맛은 분명 그들 음악에선 낯선 것이다. 가령 팬들을 감질나게 했던 첫 싱글 'Get Lucky'의 찰랑대는 커팅 기타는 마치 앨범 전체를 규정짓는 하나의 스타일처럼 느껴진다. 또한 존 로빈슨과 오마 하킴, 나단 이스트와 제임스 지너스가 번갈아 맡은 리듬 파트는 기계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성역과도 같다. 특히 두 드러머의 스타일은 쉬운 8비트로도 역동적인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존에 비해 현란한 루디먼트와 싱코페이션으로 거의 드럼 솔로에 가까운 프레이즈를 쏟아내는 오마 하킴의 플레이가 뚜렷한 차이를 보여 다른 파트들에 비해 좀 더 듣는 재미가 있다.

첫 싱글은 'Get Lucky'이지만 'Get Lucky'가 앨범에서 최고라고 할 순 없다. 나는 조지오 모로더의 이름을 제목으로 갖다 쓴 'Giorgio by Moroder'를 본작 최고 트랙으로 친다. 줄리안 카사블랑카가 보컬, 작곡, 프로듀싱에 관여한 'Instant Crush'도 물론 좋고 오케스트라와 성가대 코러스가 먹먹했던 'Touch', 이들의 2001년작 [Discovery]에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Beyond', 그리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를 음악으로 풀어낸 듯한 끝 곡 'Contact'도 훌륭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이 앨범은 'Giorgio by Moroder'의 앨범이고 'Giorgio by Moroder'는 변함없는 이 앨범의 얼굴이다.

'Giorgio by Moroder'는 조지오 자신이 어떻게 뮤지션이 되었는지부터 시작해 자신의 음악적 신념이 어떻게 역사가 될 수 있었는지까지 장광설을 가사로 배치한 뒤 차갑고 무뚝뚝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식 접근을 감행한 앨범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다. 조지오는 여기서 작, 편곡과 관련해선 어떠한 개입도 없이 진짜 자기 이야기만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듀오에게 영감을 주기엔 충분했던 것이리라. 전 세계 많은 드럼 키드들을 흥분케 한 오마 하킴의 후반 솔로는 이 곡의 거친 백미다.

비록 전자 음악을 하지만 다프트 펑크의 음악 뿌리는 비치 보이스나 비틀즈 같은 고전과 스투지스 같은 '밴드'에 내려 있다. 물론 태생이 훵키했던 그들에게 훵키해졌다 말하는 것도 공허하다. 결국 이 작품은 다프트 펑크답지 않게 들리는 음악으로 만든 가장 다프트 펑크다운 음악을 담고 있는 셈인데, 직설적이고 일그러진 비트로 파상공격을 퍼부었던 전작 [Human After All]보단 [Homework]의 열정적 비트와 [Discovery]의 따뜻한 멜랑콜리를 기계가 아닌 사람들의 합주로 잘 버무려낸 것이다. 그 안엔 두비 브라더스와 플리트우드 맥, 핑크 플로이드와 이글스가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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