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은 보통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누고 한 달은 상순 또는 초순, 중순, 하순으로 나뉜다.

요즘은 양력이 일반화 되어서 쓰이고 있지만, 사실 인간생활에 유익하고 편의를 주는 건 음력(太陰曆)이상 더 좋은 력법(曆法)이 없다. 일찍이 수렵시대를 벗어나 농사와 어업을 생업으로 삼아왔던 동양인들은 이에 의존하여 살아왔다. 자연친화적인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필요한 력법인 것이다.

정확한 분석도 없이 우리가 덩달아서 쓰고 있는 양력(太陽曆)은 지구의 공전일자와 태양의 자전속도에 의한 일치점을 맞춘데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양력도 정확하게 계산할 수가 없어서 4년에 한 번씩 윤년을 두어 착오부분을 메꾸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오토메이션화된 생산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내거나, 사무실에서 공문서를 작성해야하는 사람들에게는 날짜와 시간의 흐름만 정확하게 계산되면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계절의 흐름 일기의 순환변화에 영향을 받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때에 따라 씨앗을 뿌리고 일기의 순환변화에 맞추어 작물을 가꾸고 때가 오면 거두어 들여야 하는 것이다.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는 사리와 조금, 바닷물의 들고 남, 썰물과 밀물의 많고 적음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삶과 직접 연결이 되어 있고, 이런 필요불가결의 날짜 시간 계절의 산법(算法)은 태음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한가위 명절 추석을 전후하여 초가을 기후가 완연하다.

비닐을 이용한 농법이 발달하면서 벼 모자리가 한 달쯤 빨라졌기 때문에, 이에 따라서 들판 풍경도 예전에 비해서 한 달쯤 앞당긴 모습인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11월말에 학생들 수학여행을 가고, 황금들녘엔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꽃피는 봄도 좋고 성하의 여름도 그들 나름대로 계절의 특성이 있고 아름답지만, 아무래도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만큼 우리 인간에게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계절은 없을 것이다. 무더위에 시달리고 번성하는 병해충에 부대끼다가 아침저녁 살랑거리는 초가을 바람에 온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지는 것이다. 기계가 만들어 내는 에어컨 바람을 정체된 생존의 바람이라면, 추석을 전후하여 황금들녘을 스쳐오는 초가을 바람은 생명을 되살려내는 활력의 바람이라 할 것이다.

인간들은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로 우선 편리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얄팍한 즐거움이나 만족을 추구한다. 인간은 어쩔 수없이 육체를 영위하고 있지만 보다 고귀한 혼과 정신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근원은 혼과 정신이다. 이 혼과 정신을 키우기 위해 육체라고 하는 터전, 텃밭, 몸체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의 혼과 정신은 육체를 불려 세상에 태어나 우주공간의 모든 기운을 마시며 이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우주라고 하는 무한대의 생명체의 지극히 작은 한 생명체로 삶을 부여 받았지만, 이 큰 생명체의 우주공간은 인간으로 인하여 의미를 부여 받는 것이다. 혼과 정신을 가진 인간을 탄생시킴으로 이 큰 우주는 생명을 갖는 뜻의 공간, 의미의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새봄은 생명의 씨앗을 움트게 하는 계절이다.

초가을 들녘은 지난봄과 여름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자연을 완성에 이르게 하는 계절의 초입에서 우리는 지난날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우리 집단사회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성장을 했고, 정신과 혼은 얼마나 고고(孤高)해졌을까.

자연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마, 늘 준엄한 시선으로 계절을 바꾸어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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