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근 교수의 재미있는 약초 이야기 <17> 세조의 팔의론(八醫論)

심의 식의 약의 혼의 광의 망의 
사의 살의 깨닫게 전국에 보급

세종대왕의 차남인 수양대군은 단종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렸고, 왕(世祖)이 된 그는 말년이 되어 체력의 한계를 느껴 왕이 지명한 한명희, 신숙주, 구치관이 승정원에 상시 출근하여 왕자와 국정을 상의하는 대리 서무제인 원상제(院相制)가 1468년에 탄생되었다.

세조는 말년에 가서 단종의 어머니이자 형수인 현덕왕후의 혼백에 시달리게 되었고, 마침내는 그녀의 무덤을 파헤치기까지도 하였다. 한번은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에게 침을 뱉은 꿈을 꾸고 피부병에 걸려 고생하였다.

조선왕조 7대 세조는 평소 몸이 약해 자주 어의(御醫)들에게 치료를 받아오곤 했다. 어의들마다 출세에 눈에 멀어 세조에게 아부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질병의 고통에서 진정 벗어나도록 성심성의껏 치료하는 어의도 있었다. 심지어는 병도 없는데 병이 있다 하며 치료약을 주어 공명을 얻으려 노력하는 등등, 의원들 중에는 여러 부류의 의원이 있었다. 

한편, 왕이 복용하는 약은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쓴 약을 주지 않고 복용하기 좋게 맛이 단 약을 사용하였다. 질병을 빨리 치료하기보다는 왕의 입에 감히 쓴 약을 복용시키기를 꺼려하여 왕과 왕가(王家)의 환자들에게는 약의 맛에 신경을 썼다. 지위가 높을수록 쓴 약을 복용하기 싫어하여 의원들이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양약고구良藥苦口)"라는 속담도 있다. 세조는 『세조실록(世祖實錄)』9년에 자신이 직접 의원을 평가하는 《팔의론(八醫論》을 저술하여 전국 8도에 보급시켰다.

"의원에게는 심의, 식의, 약의, 혼의, 광의, 망의, 사의, 살의가 있으니 팔의론을 전국에 보급하여 인체를 다루는 의원들이 잘 깨닫게 하라."
"심의는 무엇입니까?
"심의(心醫)는 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늘 마음이 편안케하는 인격을 지닌 인물로 병자가 의원의 눈빛만 보고도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경지로서, 그것은 의원이 병자에 대하여 진실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있는 품격 있는 의원을 말한다."
"식의는 무엇입니까?"
"식의(食醫)는 병자의 병세를 판단함에 항상 정성이 모자라며, 병자가 말하는 병명만 생각하고 약을 지어 먹이는 의원이다."
"그러면 약의는 무엇입니까?"
"약의(藥醫)는 스스로 병자의 성색(聲色)을 판단하여 병의 경함과 중함을 찾아내려 하지 않고 병자의 말대로 약방문을 의지해 약을 짓되, 병의 성쇠(盛衰), 병자의 근력과 내장의 허실까지를 비교하지 않고 병자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부위의 약만 먹이며 차고를 가다리는 의원이다."
"혼의는 무엇입니까?"
"혼의(昏醫)는 병자가 위급해지면 같이 허둥대고, 병자가 쓰러져 잠들면 저도 같이 눈만 껌뻑이며, 오로지 비싼 약 팔 궁리만 일삼는 의원이다."
"광의는 무엇입니까?
"광의(狂醫)는 병자란 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항상 과장된다는 것을 모르고 오로지 병자의 말만 듣고 강한 약을 함부로 지어 먹이는 의원이다."
"망의는 무엇입니까?"
"망의(妄醫)는 병자의 고통보다 병자의 차림새를 보아 약값을 많이 내는 자인가에 더 관심이 있고, 또한 밤중에 찾아오면 문구멍으로 내다보고 행색이 가난하면 따돌리기 일쑤인 의원으로, 낮에 찾아가도 병자의 허실(虛實)을 보지 않고, 오로지 누구에게 무슨 약으로 고쳤다는 것만 자랑하여 비싼 약이 잘 듣는다고 우기는 의원이다." 
"그러면 사의는 무엇입니까?"
"사의(詐醫)는 오로지 의사의 행색만 흉내 내어 스스로 아프지 않는 이도 찾아다니며 병을 보는 체하다가 자기가 처방한 한 가지 약이 비방이라며 만병통치라 우기는 의원이다."
"살의는 무엇입니까?"
"살의(殺醫)는 춘하추동 계절이 바뀌는 이치와 생명이 살고 죽는 이치를 알지 못하며, 하물며 아파서 고통 받는 이를 보고도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없고, 나아가 남이 지은 약 처방에 대해 사사건건 좋은 처방이다 나쁜 처방이다 요란을 떨어 제 이름만 파는 의원이다."

이렇게 의원을 여덟 가지 부류로 분류해서 귀중한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의술로 펼치는 덕행을 마음속에 남기게 하고, 의원들 자신을 비추어 생각하게 하는 귀한 의원의 자질 분류를 세조(世祖)가 직접 만들었다. 

세조도 역시 마음을 편안하게 인간적인 의사를 으뜸으로 쳤다. 21세기는 바야흐로 심의(心醫) 시대인 것이다.

「병불능살인(病不能殺人」, 「약불능활인(藥不能活人)」 이라는 말은 '병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오, 약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즉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 있다」라는 것이다.

옛말에 좋은 의사의 조건으로 「일족이구삼약사지(一足二口三藥四持)」라는 말이 있다.

"첫째는 발로 뛰어서 환자와 마주 접하고, 둘째는 말을 많이 나누어서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주고, 셋째는 올바로 약을 잘 쓰는 것이고, 넷째는 잘 낫게 하는 것"이다.

환자의 마음을 알고 헤아릴 줄 아는 의사로서 여덟 부류의 의사들 중에서 가장 좋은 의사로 평가했던 것 같다.

최고의 의사는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킴으로 해서 정기(精氣)의 순환을 고르게 하고,  해박한 의료지식과 함께 많은 환자들을 돌보는 경험에 의한 지혜,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의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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