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시 북정동 산 702번지에 있는 북정동 부부총은 사적 제93호인 양산 북정동 고분군 가운데 제10호분이다. 북정동 부부총은 양산시 동북쪽에 있는 해발 320m의 성황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저평한 구릉의 등줄기를 따라 연주상(連珠狀)으로 축조된 대형 분묘 중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낙동강의 지류인 양산천 유역에 형성된 넓은 평야지대를 향하여 뻗어내린 능선 정상부를 따라 대형봉토분이 나란히 배치되는 양상을 보면 이 북정동 고분군은 가야지역의 일반적인 수장급 고분군 입지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의 명령에 의해 일본 고고학자 오가와 게이기치(小川敬吉) 등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 유물은 모두 일본으로 반출되어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다.

양산유물전시관은 도쿄국립박물관과의 협의를 통해 부부총 유물 68점을 대여, 2013년 10월부터 3개월간 특별전을 한 바 있다. 양산유물전시관은 양산지명 600주년을 맞아 북정동 고분내 부부총에서 출토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68점의 유물을 대여해와 100년 만에 귀환해 진행되는 '양산 부부총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앞으로 이 귀중한 유물을 일본으로부터 환수해와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으로 에상된다.

북정동의 주 능선상에 분포하는 대형 고분 18기 가운데 하나를 발굴한 것으로 피장자 부부와 순장자 인골, 그 밖에 많은 부장품이 확인되었다. 봉분은 직경 20m, 높이 5m이다. 내부 구조는 수혈계 횡구식 석실묘로 석실의 단벽 일부를 횡구부로 사용하였다. 석실 내부 중앙에는 관대가 설치되어 부부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으며, 입구부 부근에는 3구의 순장 인골이 매장되어 있었다.

신라 지증왕은 503년 악습인 순장(殉葬)을 폐지했다. 지증왕은 순장을 아까운 노동력이 사라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여겨 순장을 금지하였다. 약소국 신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력이라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평시에 농사짓는 백성들이 유사시 적군과 교전에 투입되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신라시대 토용은 순장자 대신 무덤에 껴묻기 위해 제작되었다. 토용은 옛 사람의 복식, 표정 등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무덤 안에 시체를 넣을 때 함께 넣어 매장하는 물건을 껴묻거리(부장품, 副葬品)라 한다. 순장 대신 인형을 묻는 풍습도 생겨났다. 목노비(木奴婢), 토용(土俑), 도용(陶俑)을 만들어 무덤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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