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휴가철의 정점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제법 여가 문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는 느낌인 것이다. 우선 먹고 살기에 힘이 들어서, 언제 옆을 보고 뒤를 보고 마음을 추스르고 여유를 가질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옛 조상들과 조선시대, 바로 앞 빈곤시대를 살고 간 우리의 선인들께 죄송한 마음이 앞을 가리는 것이다.

인간은 기억의 동물이면서 또한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다. 불과 1세기 전 심지어는 3, 40년 전의 일들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망각기능을 탓할 수만은 없다. 잊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들을 다 기억만 하고 있다면, 인간의 기억저장 기능은 포화상태에서 폭발의 위협에 처할 것이다.

유럽국가중에서도 '바캉스'란 말을 유행시켜 여름철 휴가의 대명사처럼 쓰게 만든 프랑스인들의 여가생활은 유별났던 모양이다. 아마 알제리를 비롯한 프랑스의 옛 식민지들이 여름휴가를 즐기기에 알맞은 자연조건을 가졌을는지도 모른다. 물론 대륙을 달리하여 개척한 식민지 백성의 인력과 자원수탈로 그만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부의 축적이 가장 큰 배경이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생활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던 유럽의 부국들에 비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빈국들은 휴가라는 말 자체, 여가를 생각하는 생각 자체가 하나의 사치행위에 속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네의 일반 서민들은 휴가나 여가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각박한 생활에 쫓기는 현실이었다. 여기 비해 왕실이나 귀족들의 여가생활은 이와는 딴판이었다. 흐드러지게 풍류를 즐기고 농탕치며 여가를 즐길 수 있었다.

휴가는 정신과 육체의 재충전을 위한 필요기간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 인간성찰의 기간이고 세상에 지친 세독(細讀)에 찌들은 육체를 본래대로 회복시키는 기간인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이 지나치면 독이 되듯이 휴가를 잘못 보내면 오히려 몸을 지치게 하고 정신을 병들게 하는 수도 있다. 그렇기에 여가는 선용해야 한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더구나 금년 여름은 세상이 너무 뒤숭숭하다.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백성들의 생활이 언제는 그렇게 한가하고 마음 편하게 사는 날이 많았을까마는, 그래도 근래에 드물게 올해 여름은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무겁고 칙칙한 계절이 되었다.

돼먹잖게 오만한 일본, 아직도 우리를 저들의 식민지쯤으로 생각하는 왜인들의 행투는, 불쾌하고 짜증나는 휴가철 정서를 우리에게 강요하는 꼴이 된 것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사실 출판업계의 통계에 의하면 가을이나 겨울 한철보다는 무더운 여름 휴가철에 가장 많은 독서량을 기록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석학들이나 독서가들은 쪽수 많은 교양서적을 독파(讀破)한건 여름 휴가철의 일이라 털어 놓는다. 역설적이지만 휴가철은 책 읽는 계절이기도 하다. 인생을 성찰하고 재충전하는 데는 독서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는 것이다.

휴가철이라 동네가 조용하고 서울은 종로거리가 한산할 지경이라고 한다. 각 직장엔 부서별 개인별 휴갓날을 정해놓고 마음들이 설렌다.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휴갓날이 어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안달인 것이다.

이렇게 객장마다 가정마다 휴가철 열병을 앓는데, 휴가는커녕 날마다 비지땀을 흘리며 숨도 크게 못 쉬고 일에 쫓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 없는 3D업종의 하급일당 노동일꾼들, 온몸이 쑤시고 아파도 땡볕아래 논밭에 나가야 하는 늙은 농민들, 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공직자와 공익시설의 당직자들, 이들은 휴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아무쪼록 돈 사정 어렵고 짜증나고 고달픈 이 여름 휴가철 무사탈출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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