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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칼럼] 日本人 모르면 韓·日 갈등 풀지 못해
  •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 승인 2019.07.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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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과거 정부가 취한 조치에 대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서해안의 포로수용소에 일본계 미국인을 감금한 일을 공식 사죄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사죄에 더하여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생존자에게 각각 배상금 2만 달러를 지급하고,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의 문화와 역사발전을 위해 기금을 지원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1993년에는 미국 의회가 1세기 전(前) 하와이 독립왕국을 정복한 잘못을 사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가는 역사적 잘못을 사죄해야 할 책임이 있는가? 공개 사죄를 정당화 하는 주요 근거는 정치공동체에 의해서거나 또는 정치공동체 이름으로 부당함이나 억압을 강요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부당함이나 억압이 희생자와 후손에게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인식하여 부당행위를 저지른 사람이나 그것을 응호한 사람들의 잘못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개 행위로서 공식사죄는 과거의 속죄를 표시하는 수단인 손해배상이나 금전지원도 포함된다. 이런 것들은 희생자와 그 후손에게 미치는 부당행위의 후유증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배상이나 금전지원이 정당한지는 당시의 시대 상황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더러는 공개 사죄나 배상을 하려는 일이 과거의 오랜 증오를 다시 꺼내어 불을 지피거나 역사적 적개심을 강화하고 피해 의식을 공고히 하며 분노를 키우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 세대가 저지른 부당 행위에 대한 사죄나 보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또 다른 논리는 상황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원칙적 논리로 과거 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현 세대가 사죄나 보상을 해서는 안되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죄나 보상은 결국 부당행위를 어느 정도 책임지는 것이며, 내가 하지 않은 행위는 사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사죄나 보상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만약 과거 정부의 행위를 현 정부가 사죄나 보상을 한다면 현 정부의 행위도 세월이 흘러 미래 정부가 사죄나 보상을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하면서 특히 금전적인 보상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해야 하므로 국민이 떠안게 된다고 말한다. 

일본정부는 과거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통치하면서 억압이나 학살 등 조선인에게 가해진 잔흑한 행위에 대해 박정희 정권 때 진심으로 사죄했고,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소멸했으며, 노무현 정권 때도 강조징용에 대한 배상을 종료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위안부 및 강제징용 등에 대하여 합의를 해놓고 지금 문재인 정부가 다시 거론하는 것은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한(韓)·일(日) 갈등은 다음과 같은 일본인 품성을 모르면 해결하지 못한다. 일본인은 정직하다. 한번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만일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지 못한다. 처음 대하는 타국인을 경계한다. 그 사람의 정직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한번 다투거나 싸우면 두번 다시 대면하지 않는다. 일본인들끼리도 다투거나 싸우면 그 날로 끝이다. 한국인은 싸워도 서로 풀고 화해를 하지만 일본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 일본에서 3년간 거주하면서 방 한 칸을 세 얻어 살았다. 그런데 한 집에 살아도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인사하면 「하이」라고 대답만 한다. 그러나 일단 신뢰를 얻으면 상황은 그와 반대로 바뀐다. 매우 상냥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 줄려고 한다.

최근 일본 매체를 보면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참아 왔지만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박정희, 노무현 정부 때 종결된 사안을 다시 거론하고, 국제법 유엔 대북제재를 무시하고 벤츠승용차, 석유, 북한산 석탄 등 유엔 금지물자를 몰래 북한에 퍼주는 모습을 보자 문재인 정부는 믿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일본인은 신뢰가 확인되지 않는 사람과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고레카라겐토시마스(これから?討します」 「고레카라간카에시마스(これから考えします)다. 당신은 믿을 수 없으니 「이제부터 검토해 보겠다.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다. 일본인을 모르면 한(韓)·일(日)갈등은 풀지 못한다.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ysnews0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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