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둥그런 눈을 가진 흰 사슴 한 마리가 친구들과 함께 초원에서 뛰어 놀다가 초원에서 절벽 건너편에 있는 더 넓고 멋진 초원을 발견했다. 흰 사슴은 건너편 초원이 보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다가가 한참동안 그곳을 관찰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갈색 사슴이 "야, 너 정신없이 뭘 보고 있는 거야?" 하고 말했다. 흰 사슴은 "아니야, 저 절벽 건너편 초원에는 뭐가 있는 지 꼭 한번 가보았으면 좋겠어."라고 대답했다. 며칠이 지났다. 흰 사슴은 위험한 절벽으로 이어진 작고 낡은 외나무 다리를 발견하고 고민에 빠졌다. "다리가 위험한데 이걸 어쩌나. 위험한 다리를 건너서라도 가 볼만한 가치가 있을까?" 며칠동안 혼자 고민에 빠진 흰 사슴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절벽의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모험을 강행했다. 그곳은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아름답고 멋진 초원이었다. 흰 사슴은 돌아가서 친구들을 불러 모아놓고 절벽이 있는 건너편 초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설명하면서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나 다른 사슴들은 여기가 살기 좋은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갈 이유가 없다면서 거절했다. 결국 흰 사슴은 마음이 맞는 갈색 사슴과 단 둘이서 위험한 절벽이  있는  외나무다리를 건너갔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되었다. 절벽이 있는 외나무다리를 건너간 흰 사슴과 갈색 사슴은 언제든지 풍부하고 맛이 좋은 풀이나 열매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사슴을 해치는 동물들도 없어, 늘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절벽을 건너 위험한 외나무다리를 건너가지 않았던 사슴들은 먹이가 떨어져 풀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사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사슴들은 지금 있는 곳에서도 충분한 풀이 있었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위험한 절벽의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모험을 하면서까지 초원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절벽이 있는 외나무다리에서 떨어질까봐 두려워서, 혹은 귀찮아서, 아니면 지금의 조건을 버리기가 너무 아까워서 등 각자 다른 이유를 내세워 눈 앞의 안일한 현실에 안주하고 말았다. 결국 현재의 그럭저럭 불만이 없는 조건을 포기하지 못해 절벽을 지나 넓은 초원에 더 풍부하고 꿀맛처럼 맛이 좋은 풀이 많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해 더 큰 꿈과 미래의 행복을 포기하고 만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K씨가 있었다. 그는 부산의 A 회사 직장인이었다. 당시 그는 4500만원 연봉을 받고 있었고, 그가 다니는 A 회사는 2∼3년만 고생하면 비약적인 성장을 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다른 B 회사에서 500만원의 연봉을 올려 줄테니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는 가야할지 안가야 할지 며칠간 고민한 끝에 B 회사로 옮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일에 놓이게 되면 불확실한 가능성을 믿는 것을 당장은 큰 손해라고 생각하며, 더 좋은 조건으로 옮겨 가려고 한다. 그런데 3년이 지난 후 A 회사는 B 회사 보다 크게 성장하면서 직원들 연봉이 5배 정도 올랐다.

이처럼 지금 당장 나에게 좋은 조건이 주어진다면 갈등을 겪게 마련이다. 그러나 5년, 10년 후라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지금의 안일하고 편안함과 미래의 성장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인간의 삶에는 보다 나은 성공으로 가는 길목에는 가끔 달콤한 유혹들이 손짓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성공의 열매를 손에 잡기 위해서는 어느 쪽이든 눈앞에 놓인 당장의 작은 이익보다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광활한 세상을 바라보고 더 높은 산봉우리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개인에게 있어서 「성장」이란 곧 기존에 지켜 왔던 것들을 과감히 버리는 것, 즉 앞의 사슴 이야기에서 흰 사슴처럼 지금의 환경을 버리고 절벽 너머 더 넓은 초원으로 이동하여 몇 년 후를 생각하며, 준비하는 미래를 위해서는 이제까지 소중히 간직해 왔던 생각을 때로는 과감하게 버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잘 판단할 줄 알아야 개인이나 집단이 성장할 수 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떠나야 바다를 만난다」는 진리를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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