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호랑이는 배가 고파 헤매고 다니다가 마침 여우를 만났다. "이 녀석, 마침 잘 만났다. 배가 고파 견디기 어렵던 참인데 너를 만났으니 잘됐다!" 그러자 교활한 여우는 눈알을 굴리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런 말은 애당초 하지도 마시요. 산속의 짐승들은 모두 나를 왕으로 모시고 있소. 내가 죽는 건 조금도 서러울 게 없소만 내가 세상을 떠나면 산짐승들이 점차 소멸하고 말텐데, 당신이 지금 당장의 시장기는 면할지 몰라도 앞으로 쥐새끼 한 마리도 없을텐데, 뭘 먹고 살아나가겠소?" "한 입에도 차지 않을 녀석이 무슨 위풍이 있다고 모든 짐승들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왕으로 섬긴 단 말이냐?" "나는 태어나서부터 거짓말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소, 그래 정 믿어지지 않으면 내 뒤를 따라와 보시오. 내가 정말 산속의 왕이라면 잡아 먹지 말고, 그렇지 않으면 잡아 먹어도 좋소" 여우가 앞에서 촐랑대며 뛰어가니 호랑이는 뒤에서 어슬렁거리며 따라갔다. 여우는 참나무가 우거진 산속으로 뛰어 갔다. 한참 입맛을 다시며 참나무 잎을 맛있게 뜯어먹던 노루와 사슴은 쉭! 하는 바람소리가 나자 두 귀를 쫑긋이 세우고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이때 눈치 빠른 여우는 시치미를 딱 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산속의 왕 여우가 왔노라! 들었느냐?" 여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루와 사슴은 호랑이를 보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급히 달아났다. "저 꼴을 좀 보란 말이오! 내가 비록 몸은 크지 않으나 산속의 왕이라서 저 놈들이 모두 저렇게 무서워 한단 말이요. 자, 이래도 내 말이 믿어지지 않소?" 호랑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여우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여우는 의기양양해서 또 호랑이를 뒤에 세우고 앞에서 쫄랑쫄랑 뛰었다. 여우는 호랑이를 데리고 멧돼지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멧돼지들은 여우가 '산속의 왕이 왕림했다'는 호령을 내리기도 전에 멧돼지들은 모두 호랑이를 보자 혼비백산 하여 줄행랑을 쳤다. "어떻소 보았겠지요? 저 놈들은 내가 얼마나 무섭던지 소리 한마디 치기도 전에 무서워 저렇게 줄행랑을 친단 말이요. 그래, 직접 눈으로 보고도 내 말이 믿어지지 않소?" 호랑이는 눈을 깜빡거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하하하!" 여우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꼬리를 추겨 세우고 산속으로 달아났다. 호랑이는 여우를 잡아 먹기는커녕 위풍을 빌려 주고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맥 없이 돌아갔다. 이 이야기에서 호랑이는 여우에게 속아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사실은 노루, 사슴, 산돼지들이 달아난 것은 여우가 무서워 달아난 것이 아니라 호랑이가 무서워 달아난 것이다. 여우는 호랑이의 위풍을 빌어 자기의 목적을 달성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삶에도 조건이 복잡할수록 신중하게 판단해야 오류를 피할 수 있다. 복잡한 사회에서 남의 달콤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려면 매사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판단에는 「선언판단」 「결합적 선언판단」 「배제적 선언판단 」이 있다. 「선언판단」이란 몇 개의 가능한 상황중에서 적어도 하나의 상황이 존재한다고 단정하는 판단이다. 「결합적 선언판단」이란 결합적 선언지를 포함하고 있는 선언판단이다. 예컨데 갑자기 전기가 나갔을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전구가 파손되었거나, 혹은 소켓에 문제가 생겼거나, 혹은 전선에 고장이 생겼거나,  혹은 정전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네 개가 서로 병존할 수 있으며, 다 참일 수 있다. 「배제적 선언판단」이란 배제적 선언지를 포함하고 있는 선언판단이다. 즉 판단에서 단정을 내린 몇 개의 선언지가 병존할 수 없으며, 그중 오직 한 가지 선언지만 정확할 수 있는 선언판단이다.

선언판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사물이 발전하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예견하며, 항상 세밀하고도 빠짐없이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매우 적극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흰염소와 검은 염소 두 마리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바쁘다면서 서로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다리목에서 이 광경을 보던 늙은 염소는 「혹은 흰 염소가 양보하거나, 혹은 검은 염소가 양보하거나, 혹은 둘다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이 판단은 선언판단이다. 배운 지식은 삶에 이용할 줄 알아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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