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룡대(盤龍臺)는 양산시 어곡동 화룡마을 앞으로 흐르는 어곡천변에 있다. 영일인(迎日人) 처사(處士) 정상순(鄭相淳)이 축조한 대(臺)로 냇가 옆에 자리 잡아 경치가 아름답다. 수석(水石)이 많아 읍재(邑宰)와 문인들의 제영(題詠)이 있다. 읍재는 고을의 원님, 수령을 말한다. 고려와 조선 시대 주부군현(州府郡縣)의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이다. 제영은 제(題)를 내어서 시(詩)를 짓는 것. 또는 그 시(詩)를 말한다. 

반룡대는 할석을 쌓아 반구형으로 담장을 둘러놓았으며, 바닥에는 편평한 자연석을 깔아 놓았다. 바닥에는 바둑판, 장기판 그리고 고누판이 새겨진 바위판이 있어 선비들이 여기(餘技)를 즐기는 공간으로도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취미로 하는 재주나 일을 의미한다. 줄이 그어진 바둑판과 장기판은 확실하게 남아 있다.

돌담 중앙부에는 최근에 조성된 반룡대 각석을 받치고 있는 귀부가 있는데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없으며, 마모와 탈락이 심하여 형상을 알아보기 힘들다. 반룡대 바로 아래에는 깊은 소가 있는데 건너편 바위에는 휴용련(休龍蓮)이라는 글자를 새긴 바위가 있다.

이곳에 머물던 선비 정재윤이 쓴 「반룡대기(盤龍臺記)가 비문으로 남아 그때 그 시절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양산군은 영남의 궁벽한 곳으로 풍속이 아름답다. 산은 나는 듯하고 물은 달려서 낙동강을 향하여 금릉(金陵, 김해)에 이르며, 바다 구름은 봉래(蓬萊, 부산)에 이어지니, 그 서북쪽 여러 산봉우리와 골짜기의 특이한 것이 취서산 기슭이 된다. 그 외에 원적산(천성산)과 금정산 또한 모두 명산으로 서로 가까운 듯 먼 듯 안고 서 있으나 그중에 은거하는 사람이 있구나. 우곡(愚谷. 은거지)을 거쳐 명(明)으로 들어가려는 것인가? 십리나 되는 바위 계곡은 서쪽으로 내달아 산에 둘러싸이고 들이 펼쳐진 곳에 이르니 이가 화룡동(化龍洞)이다. ?이 마을 앞에는 대(臺)가 있고 그 위에는 소나무가 있으니, 그 평평하고 구불구불한 형상이 늙은 용과 같아서 이곳을 반룡(盤龍)이라 이름 하였다. 여기에 대(臺)를 쌓은 이가 누구인가? 처사(處士) 정옹(鄭翁)이 그러하니 정옹은 가히 뜻이 있다 하리라......"

반룡대기에 나오는 용을 닮은 소나무는 말라죽었지만 아직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반룡대(盤龍臺)는 주변의 어곡공단, 공장, 레미콘공장 등으로 절경이 일부 훼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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