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시의회에서는 6월 24일 김효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백농 이규홍 선생 항일 독립운동 서훈 요청 건의문'을 양산시의회 시의원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6월 19일 발의한 건의문은 김효진, 서진부, 박일배, 정석자, 임정섭, 이상정, 이종희, 이용식, 문신우, 김태우, 최선호, 곽종포, 박재우, 이장호, 김혜림, 박미해, 정숙남 의원 등 17명이 발의자로 서명하였다. 

건의문이 나온 배경은 필자가 상해임시정부 독립투사 이규홍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지 못하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새로운 자료를 발굴 후 증언서를 작성하여 손자 이경우 씨를 통해 보훈처에 제출하고, 양산시의회 서진부 의장과 김효진 부의장에게 협조를 당부드렸기 때문이다. 양산시의회 모든 의원들께 감사드린다. 다음 내용은 양산시의회 결의문 내용의 일부이다. 

"1893년 경남 양산군 상북면 대석리에서 태어난 이규홍 선생은 1917년 부산에서 위장 무역업체인 일광상회 경영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교류하다가 1919년 상해로 망명하여 같은 해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청년단 출판부장을 역임하였고, 11월에는 임시정부 학무차장을 지냈다. 1921년 3월부터는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여 외무총장, 재무총장(1924~1925년), 외무총장(1925년)을 역임하였다.

이후 1926년에는 국민대표기성회 위원이 되어 임시정부 내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노력하였고,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국회 부의장)에 올랐다. 또한 당시 국무령인 '김구'의 추천으로 국무원(장관)에 임명되어 임시정부 약헌 기초위원으로 활동 중 과로로 인해 병을 얻어 귀국하였고, 1939년 5월 타계하였다"

"위 내용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백농 이규홍' 선생의 항일독립 행적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1930년 이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중병이었던 결핵에 감염되어 고향에 돌아와 생계유지 차원에서 사업 명의를 대여한 것이 친일 성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일제 강점기에 사업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을 논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한 친일파 명단에 오른 것도 아니고, 이규홍 선생의 후손들이 확인한 일본 외무성 기록에도 '요시찰 인물'로만 남아 있고 변절의 내용은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가지고 손자분인 이경우 씨(70세)가 백농 이규홍 선생의 독립운동가 서훈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국가 보훈처의 냉담한 거절에 매번 낙담하고 있습니다" 이하 생략.

이렇듯 하루 빨리 독립투사로 서훈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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