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 10일 미군정 치하에 있던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보통, 평등 직접 무기명 투표가 실시되었다.

이어서 5월 31일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위한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7월 17일 헌법과 정부조직법을 공포하고, 20일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하였으며,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건국을 내외에 선포했다. 따라서 이날 0시를 기해 미군정장관의 군정폐지 선언이 있었다.

이때에 당선된 209명의 국회의원 중에는 독립운동을 했거나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한 애국지사들도 몇 명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대다수의 한독당(韓獨黨)계열 임시정부 요인들이나, 나라의 조속한 해방독립을 위한 효과적인 한방편이나 수단으로 사회주의 계통에 몸을 담았던 인사들은 이미 미군정과 이승만계열의 철저한 탄압과 견제에 의해 출마의 길이 봉쇄된 상태에 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때의 국회의원들은 전부 다는 아니어도,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소박한 의미의 애국심이나 민족의식, 사명감, 동포애를 근거로 하여 국사(國事)에 참여한다는 몸가짐이었다. 오늘의 국회와 그 구성원들의 몸가짐이나 의식구조를 제헌국회의 10만 선량(選良)들과 견주었을 때, 할 말이지 하늘과 땅차이의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금 국회는 휴면중이다. 그저 좋게 조용히 잠자고 쉬기만 한다면야 누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마는, 날마다 자고새면 싸움질에 유치원 아이들 듣기에도 민망한 저질 막말에, 시정잡배만도 못한 거칠고 흉폭스런 행동거지를 일삼는다. 입만 벌리면 상대정당을 헐뜯고, 상호 당대표나 지도자들을 험담 비방한다. 자기 똥 구린내 나는 것은 전혀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 사타구니 냄새만 고약하다고 악담을 쏟아낸다.

국회는 글자 그대로 나랏일, 국사를 의논하고 처리하는 곳이다. 국회의원 개개인은 어느 누구의 아들이거나 딸, 어떤 집안의 아버지나 어머니, 그런 사사로운 존재나 인격만이 아니다. 귀한 시간을 버리고 발품을 팔아 투표소에 가서, 자신의 이름 밑에 빨간 동그라미를 찍어서 선출해준 군민이나 시민들의 대표이고 공복(公僕)인 것이다.

선거민주주의 체제에서 국회의원은 대의정치의 상징이요 당사자인 것이다. 대의정치는 국민들 유권자의 뜻을 대신 전달 반영하는 정치제도이다. 자기 개인 생각대로 사사롭게 국회활동을 해선 아니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경제면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고, 소득이 낮은 동남아 사람들은 코리안 드림으로 밤잠을 못자고 가슴을 설렌다고 한다. 국민교육수준은 OECD국가 중 최상위급에 속한다. 스포츠도 강국이어서 하계올림픽은 물론 동계올림픽도 치루었다. 월드컵도 벌써 17여년 전에 성공적으로 치루었다.

문제는 정치다. 우리사회에서 가장 낙후되고 저질 후진병을 앓고 있는 곳이 정치 분야이다. 그 낙후되고 저질스런 후진국병의 대표주자가 국회이고, 그 꼴사나운 주인공들이 곧바로 국회의원 나리들인 것이다.

집권 여당은 학교 다닐 때 거리로 뛰어나가 최루탄연기 몇 방 먹고 혹은 감옥 문지방 몇 년 넘나든 공로로 국회의원, 장관 감투를 썼으니, 그 단물 맛을 쉽사리 버리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야당은 눈 빤히 뜨고 광화문 광장으로 몰려나온 촛불 물결에 그 대단하던 권력을 빼앗겨 버렸으니, 원통하고 절통해서 자나 깨나 청와대 대통령자리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이다. 철딱서니가 없어도 어지간하게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나라의 앞날 민족의 장래,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국민생활에는 관심이 없고, 여건 야건 모두다 한결같이 개인의 영달이나 감투와 권력에만 눈이 어두운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제헌국회가 열리고 나라를 세우고 70여년을 달려 왔어도 민족역사는 제자리걸음이다. 38선 대신 휴전선이 생기고, 그 휴전선 앞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서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명색이 국회의원이라면, 최소한 제가 앉은 자리값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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