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람들은 베스트앨범을 곱게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베스트앨범이란 한물 간 뮤지션의 추억팔이용 또는 아티스트의 펄떡이는 역량과 집념이 거세된, 그저 과거 히트 한 곡들을 추려 담은 상업적 '비정규' 앨범일 뿐이다. 아바와 스콜피온스, 퀸이 그 뛰어난 음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과거를 우려먹는 팀들'로 왜곡 전파된 것도 바로 베스트앨범에 찍힌 부정적 낙인 때문이다.

지금 나는 반대로 베스트앨범을 긍정하려 한다. 그 뮤지션을 몰랐던 사람에게 그 뮤지션의 매력을 알려주는 역할. 베스트앨범의 진짜 가치는 여기에 있다. 아바와 스콜피온스와 퀸을 나 역시 그렇게 만났고 스티비 원더와 롤링 스톤스, 이글스도 그들 전성기가 지난 뒤 발매된 베스트앨범으로 안면을 텄다. 만약 베스트앨범이 아닌 범작들로 저들을 처음 들었다면 지금처럼 깊게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흠모하지도 않았을 게다. 따지고보면 내 인생에서 베스트앨범이란 헤비리스닝의 전초전인 셈이었다. 

왬!도 그랬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그러니까 80년대 후반 [The Final]과 조지 마이클을 처음 알았다. 일본과 미국에서만 발매된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 대신 나는 이 앨범으로 왬!의 커튼콜을 지켜본 것인데, 얄궂게도 왬!의 마지막 앨범으로 왬!을 안 것이다.

80년대 후반. 그때는 스마트폰 하나로 거의 모든 걸 할 수 있는 요즘관 전혀 다른 아날로그 시대였다. 비디오와 카세트 테잎이 있었고 <폴리스 스토리>와 <로보캅>이 동네 극장에서 각축을 벌였다.

그러다 만난 왬!은 어린 나에게 팝이라는 것이 어떤 음악인지 알려준 첫 사례였다. 일단 그것은 신났고 달콤했으며 깔끔한 데다 무엇보다 섹시했다. 

샴푸인지 치약인지 어떤 소비재 광고였다. 굉장히 상쾌한 표정으로 해당 제품의 탁월함을 부각시키며 모델들이 춤을 출 때 'Wake Me Up Before You Go-Go'가 BGM으로 흘렀었다. 흰 라운드 티셔츠와 물 빠진 청바지가 조금씩 젊음을 대변하기 시작할 즈음 접한 그 영상과 음악의 안정된 궁합은 그대로 내 젊음의 배경음악이 되었다. 데뷔 싱글인 훵키 팝-랩 트랙 'Wham Rap! (Enjoy What You Do)'로 시작하는 영국 팝 듀오의 이 역사적인 파이널 앨범이 아직까진 가요에 젖어 살던 한 10대 초등학생에게 사운드와 멜로디, 정서 면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열어준 것이다. 나는 조지 마이클을 그렇게 시작했다.

이 앨범의 백미는 이 앨범의 허리에 배치된 여섯 트랙 즉, 'Wake Me Up Before You Go-Go'에서 'A Different Corner'까지 흐름이다. 스테이지 형제(stage-brother)인 데이비드/돈 워즈가 작곡한 조금은 유치한듯 애절했던 발라드 'Where Did Your Heart Go?'와 함께 한때 푹 빠져 듣던 블루-아이드 소울 넘버 'Careless Whisper', 경쾌한 피아노 리프와 조지 마이클의 해맑은 목소리에 홀딱 반한 'Freedom', 발표 후 33년이 지난 지금도 크리스마스만 되면 거리를 접수하는 절대 시즌송 'Last Christmas', 게걸스러운 신시사이저 멜로디와 비트를 앞세운 'Everything She Wants', 'Wake Me Up Before You Go-Go' 만큼 상쾌 명쾌 유쾌한 'I'm Your Man', 쓸쓸하고 슬픈 무드를 내뿜었던 어덜트 컨템포러리 명곡 'A Different Corner'. 35분을 넘는 영국 대표 팝 듀오의 베스트앨범 허리는 그야말로 왬!의 베스트를 액기스만 모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팝 역사 한켠에 박제된 포스트-디스코/뉴웨이브 스타일에 불과하겠지만 조지오 모로더의 '손에 손 잡고'가 시대를 매듭 짓던 때 들은 왬!은 꽤 첨단을 달리는 음악이었다. 아직 덜 여문 귀를 가지고 있던 어린 나에게 그것은 팝의 기준이었고 팝을 들어야 할 이유였다. 이젠 세상에 없지만 조지 마이클은 그렇게 나를 팝의 세계로 안내한 거의 첫 번째 사람이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렇게 오랜만에 들어도 그 감동이 여전한 걸 보면 그의 음악도 내 선택도 모두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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