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고을에 한양에 사는 대감의 외아들이 신관 사또로 부임에 왔다. 이 사람은 워낙 천방지축 철부지였지만 애비덕에 영특한 아내를 얻고 고을 원님으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부임하여 이튿날이었다. 남의 소를 빌려 밭을 갈다가 점심때가 되어 언덕에다 소를 매어 놓고 점심을 먹고 와 보니 소가 벼랑에서 굴러 떨어져 죽자 소 주인은 당장 소를 사 내라느니, 농부는 차차 벌어서 변상을 하겠다느니 하면서 서로 다투다가 사또의 현명한 판결을 받으려고 상소하러 왔다. 사연을 다 듣고난 신관 사또는 「여봐라, 게 좀 기다리고 있거나!」 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랐거니와 또 집을 떠날 때 「어떤 일이든 혼자 처리하지 말고 네 아내와 상의한 후 처리하도록 하라」고 한 애비의 당부가 있었기에 부인에게 상의하러 들어간 것이다. 남편의 말을 듣고 부인은 「아니 그만한 일도 처리하지 못하십니까?」하고 핀잔을 준 다음 말했다. 「소 주인이야 어찌 소 값을 물어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소를 빌려 쓴 사람은 무슨 돈이 있어 당장 소를 사주겠습니까? 죽은 거야 이왕지사 죽었으니 가죽은 벗겨서 나라에 바치고 고기와 뼈는 팔아 그 돈으로 자그마한 송아지를 한 마리 사서 키운 후에 큰 소를 대체하라고 하십시요!」 사또는 부인의 가르침을 받고 안방에서 나와 그대로 외쳤다. 「여봐라! 죽은거야 이왕지사 죽었으니 가죽은 벗겨서 나라에 바치고 고기와 뼈는 팔아서 그 돈으로 자그마한 송아지를 사서 키워 큰 소를 대체하도록 하여라!」 그러자 두 사람은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 다음날에는 이런 송사가 들어왔다. 두 노인이 장기를 두다가 외통수에 걸린 노인이 한 수만 물려 달라고 사정사정 했으나 끝내 물려주지 않자 화가 나서 장기판을 집어 던진 것이 그만 상대편 노인의 얼굴에 맞아 즉석에서 죽었던 것이다. 죽은 노인 아들이 즉시 신관 사또에게 송사를 올렸다. 사연을 다 듣고난 사또는 이 일을 부인에게 물었다간 또 핀잔을 들을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어제 죽은 소에 대한 상소를 처리한 일이 떠올라 「옳지!」 하고 그대로 하면 되겠다 싶어 큰 소리로 선고했다. 「여봐라! 죽은 거야 이왕지사 죽었으니 가죽은 벗겨서 나라에 바치고 고기와 뼈는 팔아서 그 돈으로 조그마한 아이를 하나 사서 키운 후에 애비를 대체하도록 하여라!」 이 말을 듣고 죽은 노인의 아들은 너무도 기가 막혀 밖으로 나오자마자 거기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분개하여 함께 일어나 무지막지한 신관 사또를 관아 밖으로 내쫓았다. 이렇게 하여 그는 겨우 사흘 밖에 사또 노릇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신관 사또는 어찌하여 사흘 밖에 사또 노릇을 못하고 쫒겨나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의 판단이 너무나도 황당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 생활 가운데는 그릇된 판단 과오를 저지른 사례들은 흔히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정확한 판단은 정확한 행동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며, 잘못된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타당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러면 판단이란 무엇인가? 판단이란 사고의 대상에 대하여 그 무엇이라고 단정하는 형식이다. 다시 말하면 사고의 대상 즉 사물, 현상, 사상, 언어 등의 성격, 관계, 상태 등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긍정 흑은 부정을 표시하는 사고 형식이 바로 판단이다. 판단은 객관적 사태에 대한 반영이며, 설명이므로 거기에는 객관적 사태의 실상에 일치하는가 일치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그 판단이 객관적 사태의 실상과 일치하는 것이면 옳은 판단이고 객관적 사태의 실상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면 그릇된 판단이다. 따라서 판단의 진리성 여부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도 오직 사회속에서의 실천을 통해서이지 결코 사람들의 주관적 의지가 아니다.

그러나 관념론자들은 판단의 진리성 여부는 판단과 판단간의 일관성 여하에 달렸다고 주정한다. 즉 거짓말이라도 말과 말이 서로 어울리면 진리로 된다는 것이다. 실용주의자들은 판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이면 옳은 판단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릇된 판단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일상생활 가운데서 잘못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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