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권우상칼럼] 도끼를 잃은 농부
  •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 승인 2019.05.17 09:55
  • 댓글 0

옛날 어느 마을에 한 농부가 도끼를 잃었는데 틀림없이 옆 집에 사는 젊은이가 훔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농부는 옆집 젊은이의 거동을 매일 유심히 살펴 보았는데 길을 걷는 모양이나, 말하는 목소리나 거의 일거일동이 다 자기의 도끼를 훔친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농부는 틀림없이 그 젊은이가 도끼를 훔친 장본인이맞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 후 며칠이 지나자 농부는 산에 갔다가 잃었던 도끼를 찾아냈다. 며칠 전에 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깜빡 잊고 도끼를 그 곳에 두고 왔던 것이다. 이튿 날 농부는 또 다시 옆집에 사는 젊은이를 만나게 되었다. 다시 이모저모 살펴보니 길을 걷는 모양이나 말하는 목소리나 거의 일거일동이 다 자기의 도끼를 훔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농부는 자기의 주관적 억측으로 좋은 사람을 한 때 도적으로 간주했으니,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판단을 타당하게 내리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항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즉 판단의 내용이 진실해야 한다. 위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객관적 사태의 실제적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는 판단만이 타당한 판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객관적이고 주도 면밀한 조사 연구를 판단의 전제로 삼아야 한다. 둘째, 논리에 맞아야 한다. 즉 판단의 형식이 정확해야 한다. 판단을 타당하게 내리려면 우선 그 판단을 구성하는 개념이 정확해야 하는 동시에 또 그 판단을 구성하는 개념과 개념간의 연결이 타당해야 한다. 셋째, 실천의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 즉 판단이 공담(空談 : 헛말)으로 구성되어서는 안된다. 객관 세계를 인식하고, 합리적 실천을 뒷받침하는 도구로서의 판단은 실천에서 나오며, 또 실천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 그러므로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실제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하는 판단은 타당한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한 사례를 보자. 병원에서 옥희가 의사에게 「선생님, 새벽 조깅이 여학생들의 건강에 좋은가요 나쁜가요?」 하고 묻자 의사가 말하기를 「생리학적 원리에 부합되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나쁘지요」라고 대답했다. 의사의 이 대답은 옥희가 알고 싶어한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올바른 해답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낱 공담(空談)에 지나지 않는다. 

공담(空談)으로 구성된 판단은 그 내용이 모두 거짓이거나 그 형식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실천을 위한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타당한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넷째, 판단은 언어를 통하여 표현되기 때문에 판단을 타당하게 내리려면 언어, 특히 문법(文法)을 잘 공부하고 숙달해야 한다. 일정한 언어 훈련은 판단을 타당하게 내리는 데에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 한 사례를 보자. 「정의는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은 물론 진실한 것이다. 그러나 이 판단의 표현 형식이 인류 역사 발전의 필요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타당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정의는 꼭 승리한다」는 판단은 그 형식에 있어서 인류 역사 발전의 필연적인 합법칙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타당한 판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장의 뜻을 잘 분석하면서 적당한 판단 형식을 취하여야 한다.

인류가 신체적으로는 사자나 호랑이에 비해 매우 허약한 구조를 가졌다. 하지만 사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막대기, 돌도끼, 활, 불 등을 이용하여 약점을 보완하여 결국 현대의 최첨단 컴퓨터까지 발명하여 지적 능력을 무한히 확대해 왔다.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 즉 사유(思惟)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판단이란 사고의 대상에 대하여 그 무엇이라고 단정하는 사고의 형식이다. 다시 말하면 사고(思考)의 대상 즉 사물, 현상, 사상, 언어 등의 성격관계 상태 등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긍정 혹은 부정을 표시하는 사고 형식이 바로 판단이다. 철학적 용어의 판단은 칸트 철학에서, 개념의 능력인 오성(悟性)과 추리의 능력인 이성(理性)의 중간에 위치하여, 특수한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포괄하여 생각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물의 좋고 나쁨 또는 진위나 가치를 분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ysnews0900@hanmail.net

<저작권자 © 양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