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자유는 내면적(정신적)인 신앙의 자유와 외면적(육체적)인 종교적 행위의 자유로 구분된다. 

신앙의 자유는 사람이 어떤 종교든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을 믿지 않는 자유이다. 

종교적 행위의 자유는 신앙을 여러 가지 형태로 외적으로 표현하는 자유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에는 행위의 내용에 따라 예배의 자유, 종교적 집회·결사의 자유, 종교교육의 자유, 선교의 자유 등 종교적인 여러 활동의 자유가 포함된다. 

이 개념은 인류의 자유 획득 과정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근세까지만 해도 널리 실현되지 못했으며, 오늘날조차 전세계적으로 완전히 실현되지 있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것이 근대헌법이나 권리장전에서 규정되고 보장된 것은 이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오랜 투쟁의 결과였다. 

21세기 오늘날에도 북한처럼 종교의 자유가 없는 국가가 있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픈도어(Open Door)선교회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기독교인에 대한 종교적 자유를 탄압하는 가장 최악의 국가이다. 

이 선교회는 북한정권에 의해 2005년에만 수백 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수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정치범수용소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동안에도 종교의 자유를 가장하고 있으며, 평양에 외국인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전시용 교회를 세워 예배를 지원함으로써, 인권침해를 감추려 한다고 밝혔다. 

기독교는 동유럽과 구소련의 공산정권을 몰락하도록 자극한 주요 요인으로, 북한정권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 결과 북한 권력자들은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한 무자비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지금부터 80년 전, 에게해에 있는 그리스 아모르고스섬에 죄수 수송선 한 척이 도착했다. 수송선에서 내린 미노스 코키나키스는 그 외딴섬에서 13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그리스 법원은 개종 활동을 금지하는 새로운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심리도 하지 않고 코키나키스 형제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코키나키스 형제를 시작으로 1938년에서 1992년까지 여호와의 증인은 그리스의 독재자 이오아니스 메탁사스가 정한 개종 활동 금지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1만 9147차례나 체포되었다.

그 기간 동안 그리스의 수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은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신체적 학대, 체포, 수감 생활을 인내해야 했다. 코키나키스 형제는 30세쯤 되었을 때부터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자유를 얻기 위해 50년간 법적 투쟁을 벌였다. 그는 60여 차례 체포되었고, 여러 감옥과 섬들에서 6년 이상 수감 생활을 했다. 

코키나키스 형제를 비롯한 증인 수감자들은 매우 가혹한 환경을 견뎌야 했다. 코키나키스 형제는 77세 때 마지막으로 체포되었는데, 그리스 대법원에까지 상소하며 법적 투쟁을 벌였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그리스 당국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유럽 인권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마침내 1993년에 84세가 된 코키나키스 형제는 큰 법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 사건은 유럽 인권 재판소가 한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결한 최초의 사례이다. 2018년은 이 역사적인 판결 이후 25년째가 되는 해다. 

한 국제 공법 교수는 코키나키스 사건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사건은 유럽 인권 재판소가 종교 및 신앙의 자유에 관해 내린 판결 가운데 아마도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건일 것이다." 코키나키스 사건에 대한 판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좋은 판례가 된다. 

러시아와 같은 강력한 정부들이 수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코키나키스 형제의 믿음과 봉사에서 그가 나타낸 끈기 있는 태도는 전파 활동에서 반대를 받는 형제 자매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된다. 그의 충절의 기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증언을 하고 있다. (로마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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