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출신의 독립투사 백농(白農) 이규홍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에서 요직을 맡아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분투하였으나 국가유공자로서의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후손들이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보훈처의 고지식하고 가혹한 심사 규정 때문에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지 못하여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공적에 합당한 대우를 인정받지 못하여 명예가 실추되고 후손들이 고초를 겪고 있다. 백농과 비슷한 백봉 라용균 선생은 서훈을 받았기에 소개한다. 

백농 이규홍 선생은 상북면 대석리(현재 죽림산방이 생가)에서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한학을 배운 후 일본 명치대학 법학부에 유학했다. 대학 졸업 후 1919년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법무부 위원, 임시정부 학무차장, 내무차장, 재무총장, 외무총장까지 역임했다. 제8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경상도 선출 의원, 임시의정원 부의장, 국무원, 외무장, 헌법기초의원 등 쟁쟁한 요직에서 활동했다. 

상해에서 임정 요인으로 활동하다가 법정 전염병인 폐결핵에 걸려 고향인 양산으로 귀국하여 일본 경찰에 의해 요시찰 인물로 주목받으며 가택연금을 당해 집에서 요양하였다. 

지금은 폐결핵이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쉽게 완치가 되지만 그 당시는 의료기술이 낙후되어 폐결핵은 중병으로 인식되었다. 전염성이 강하여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백농 선생이 상해에서 귀국 후 가촌토지주식회사 사장, 환영자동차회사 무한책임사원 근무 기록이 남아 있어 친일활동으로 의심받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백농 선생의 이름이 올라간 것은 재산을 상속받지 못한 동생과 아들이 형식상 요건을 갖추지 못해 부득이 그렇게 한 것으로 유추되고 있다. 생계유지를 위해 사업한 것을 친일로 보는 것도 문제다.

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주지 않자 유족들은 일본 외무성 자료까지 찾아서 입증 노력을 기울였다. 기록을 보니 일본 경찰의 요주의 인물로 등록되어 편지까지 검열받았으며, 변절, 투옥 기록이 없다는 것이 나왔다. 유족이 밝혀낸 자료를 보훈처에서 인정을 거부하였다.

백농 선생과 유사한 사례지만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은 경우가 있어 최초로 밝히고자 한다. 

국회에서는 백봉 라용균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99년부터 '백봉 신사상'을 제정하여 매년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한 국회의원에게 시상해오고 있다. 1999년 제1회 수상자는 강재섭 의원, 김근태 의원, 김민석 의원, 김원길 의원, 맹형규 의원, 정균환 의원, 정동영 의원, 정세균 의원, 조순형 의원, 천정배 의원, 한화갑 의원, 홍사덕 의원 등이다.

라용균 선생은 1919년 일본 와세다대 유학 중 동경조선유학생독립선언(2·8선언) 주동자로 투옥되었다가 1919년 상해로 망명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1922년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열렸을 때 준비위원으로 선임됐는데, 위원장에는 남형우, 회계에 김철·원세훈, 서기에 라용균·서병이 각각 뽑혔다.

독립운동을 하던 라용균은 1923년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정세를 상세히 파악하기 위해 영국유학을 결심하고 배를 타고 런던에 도착하였다. 처음에는 옥스포드 대학에 들어갔으나 학비가 너무 비싸 감당하기가 어려워져 런던대학으로 옮겨 정치경제학을 전공하였다. 당시 런던대학에는 라스키 교수 등 정치 경제 분야에 탁월한 교수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는 영국에서 7년을 체류하며 공부를 했다. 

영국유학을 마친 그는 193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고국에서는 그의 부친이 일제에 의해 18번 가택수색을 당하는 등 자식의 뒷바라지로 많은 수모를 겪고 있었다. 귀국 후 일제의 갖은 유혹과 협박을 물리치고 시골집에서 조용히 농원 생활을 하였다. 토지개량사업을 해보라는 일본인 친구의 권유로 한때 전남에서 간척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해방 당시 3천 석을 추수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백농 선생은 폐결핵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려 전염을 우려한 일경의 가택연금으로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처지가 못 되었다. 사돈인 지영진씨와 아들의 사업에 이름만 걸친 것이다. 

백농 선생은 명의만 의탁했지만 백봉 라용균 선생은 자신의 의지로 간척사업을 하였는데도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기에 형평성이 어긋나는 것이다. 친일파 명단에도 없는 백농은 서훈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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