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400명의 어린이, 거북선 놀이시설 방문
진해만의 특색 살린 이색 놀이시설로 `입소문`

진해루해변공원 내 설치된 거북선 모양의 어린이 놀이시설

 인구절벽이라는 현실에서 어린이들의 안전과 정서교육, 그리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의 생활과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2017년도 우수어린이놀이시설`을 통해 젊은 도시 양산의 놀이터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거북선,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다
 ② 놀이터의 이유 있는 변신
 ③ 도시에서 자연과 놀다
 ④ 양산의 어린이 놀이터 안전대책

 

① 거북선,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다

진해루와 거북선 어린이놀이시설

■ 진해루 해변공원을 지키는 거북선 놀이시설
 
 창원시 진해구 진희로 150에 위치한 진해해변공원은 진해 앞바다 해안가에 친환경적으로 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많은 시민들이 쉽게 찾아와 가족과 함께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공원이다. 공원 중앙에는 연면적 477㎡에 높이 15.2m의 주심 삼포양식의 팔작지붕으로 건립된 진해루가 있으며, 야간에 멋진 풍경이 연출되도록 경관 조명 시설도 갖춰져 있다. 진해루는 아름다운 조망과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지역 명소로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지난 2011년 9월에는 이동교에서 해변공원 까지 보행 공간이 없었던 신이천 도로변에 데크로드를 조성해 교통사고 위험을 현저하게 낮추고 인근 진해루와 해변공원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의 접근성도 한층 높아졌다. 
 진해루해변공원 내 설치된 `진해루 해변공원 어린이놀이시설`은 기존에 있던 어린이 놀이시설이 그 수요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고 노후화 되어 있다고 판단해 1억7천1백만원 상당의 공사비를 투입해 지난 2015년 12월 29일 부터 2016년 3월 27일 까지 교체공사를 진행, 진해루의 상징성과 시민이용 만족도, 랜드마크성 조형개념을 가미한 거북선 모양의 놀이시설로 교체했다. 바닥에는 탄성포장을 하고 어린이 놀이시설과 주변 광장을 분리시키는 앉음벽을 설치해 이용객들에게 분리된 공간을 제공해 아이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의 편의와 안전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진해루 해변공원 어린이 놀이시설`은 지난 2016년 전국 시ㆍ도 지자체 교육청 별 어린이 놀이환경이 뛰어난 시설로 추천되어 국민안전처로 부터 `우수 어린이 놀이시설`로 선정됐다.
 
 

거북선 어린이놀이시설 내부

■ 진해만의 상징성을 부여한 어린이 놀이시설
 
ㆍ천혜의 군항 진해
 
 대한민국 해군의 기지인 진해 해군기지는 한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해군의 요충지다. 남으로는 29개의 유ㆍ무인도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북으로는 병풍처럼 진해만을 에워싼 장복산 자락이 진해만까지 뻗쳐 있다.
 실제로 진해 전체가 벚쫓으로 흩날리는 3월 말에서 4월 초 `진해 군항제` 시기의 진해구 도로는 마비상태가 된다. 
 전국에서 진해의 벚꽃 향기에 취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기 때문이다.
 일제 때 군항을 짓고 일본이이 많이 모여 살면서 벚꽃을 심은 것이 진해 벚꽃의 시초라 하는데, 해방 후에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며 시내 곳곳의 벚나무들을 뽑았다. 한때 논쟁이 된 왕벚나무가 한라산을 고향으로 하는 우리 고유의 수종으로 확인되며 진해에 다시 한번 벚나무를 심기 시작했는데 60년대 심어진 나무들이 반세기를 지나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진해 벚꽃축제를 `군항제`라 부르는 이유는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추모제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북원로타리에 가면 볼 수 있는 충무공동상 또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다.
 
■ 거북선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
 
ㆍ거북선
 
 현재까지 전해오는 문헌 중 `거북선`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는 1413년(태종 13) 5월 초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 거북선이 왜선으로 꾸민 배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고, 2년 후에는 다시 "거북선이 매우 견고하여 적선이 해치지를 못한다"고 되어 있으나, 어떤 형태와 규모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혀 있지 않다.
 그 후 180여년 간 거북선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다가 이순신 장군의 임진년(1592) 일기인 난중일기 2월 8일 글에 "거북선에 사용할 돛 베 29필을 받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난중일기에 따르면 거북선에 비치한 포를 처음 발사한 날은 임진년 3월 27일이며, 처음 해전에 참가한 것은 장계에서 "5월 29일 사천해전"이라 기록하고 있다.
 태종 때의 거북선과 이순신이 말한 거북선과의 관계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거북선은 이순신의 고안에 의해서 군관 나대용(羅大用) 등이 실제로 건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거북선이 임진왜란 때 돌격전선으로서 기능을 발휘함에 따라 전란 후에는 그 모양이 조금씩 변해 용머리는 거북머리로 바뀌고, 치수도 장대해지는 등 차차 크게 건조되었는데, 1795년(정조 19)에 간행된 이충무공전서에 `전라좌수영 거북선` 및 `통제영 거북선`의 그림과 함께 건조에 필요한 부분적인 치수가 어느 정도 기록되어 있다. 
 
 ㆍ충무공 이순신
 
 이순신의 본관은 덕수이고, 자는 여해, 시호는 충무이다. 1545년(인종 1)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현재 인현동)에서 이정과 초계 변씨와의 사이에서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1572년(선조 5) 훈련원 별과에 응시했으나 말에서 떨어져 왼쪽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탈락하였다. 그래서 30세가 넘은 1576년(선조 9)에야 식년시 무과에 병과로 급제해 관직에 나섰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수사 원균의 요청을 받아 경상도 해역으로 출정해 왜군과의 해전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두었다. 6월 16일 옥포와 합포에서 왜선 30여척을 격파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고 다음날에도 적진포에서 10여척의 왜선을 격파하였다. 이 전투들에서의 승리로 조선 수군은 왜군과의 해전에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공으로 이순신은 종2품 가선대부로 승진했다. 7월 8일에는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류해 사천에서 서해로 북상하려던 왜선 13척을 모두 격침시켰다. 
 7월 10일에는 당포에서 왜선 21척을 불태웠으며, 7월 13일에는 왜군이 도주해 진을 치고 있는 당항포를 공격해서 왜선 26척을 격침시켰다. 이러한 잇따른 승리로 이순신은 정2품 자헌대부가 되었다.
 이순신에게 잇따라 패배한 왜군은 수군의 모든 역량을 전라도로 집결해 맞서려했다.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과 함께 8월 14일 견내량에 집결해 있는 왜군을 한산도로 유인해 50여척의 왜선을 격파ㆍ나포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안골포에서 지원하러온 왜군을 다시 물리쳤으며 10월 5일에는 왜군의 근거지인 부산포에서 왜군의 병선 100여척을 파괴했다. 이러한 승리로 조선 수군은 제해권을 장악했고, 북상하던 왜군은 병력 보충과 군수품 보급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공으로 이순신은 정2품 정헌대부가 되었다.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의 위대함은 역사책에서의 학습으로도 유익하지만 이러한 어린이놀이시설 모형으로도 충분히 큰 교육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 바다의 풍치와 어울리는 진해해변공원 거북선 놀이시설
 
 진해해변공원 거북선 놀이시설은 거북선의 상징성으로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교육효과를 나타내는 진해만의 특성화된 놀이시설일 뿐 만 아니라 미래 우리 아이들에게 정서적 육체적 건강을 위한 시설이다.
 어린이 안전에 대한 국민관심 제고와 안전한 놀이 공간 확산으로 안전사고가 없도록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본지에서 추진하는 `기획취재 2`는 우수놀이시설로 선정된 곳을 찾아 시설사진과 관리, 활용도에 관한 취재를 하여 신문에 게재함으로서 많은 곳에 노후된 놀이시설로 인한 안전사고들을 미연에 방지하기위한 시설확충이나 교체에 지자체의 예산이 투입되어 부모들이 안심하고 자녀들을 어린이집이나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취재목적에 두었다.
 저 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이라는 단어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현실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성장해 갈 수 있는 놀이시설을 지자체와 교육청이 더욱 심여를 기울여 관리해 나가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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