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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호갑사(捉虎甲士) 이겸수(李謙受) - 38 -

 

전라남도 남원시에 세워진 만인의총(萬人義塚 사적 제272호) 기념관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남원성 전투도. 정유재란 기간인 1597년 8월 13일에서 16일까지 나흘 동안 벌어진 남원성 전투는 말 그래도 혈전이었다고 전해진다. 조선군과 명군 그리고 남원성에 모여 있던 일반 백성 포함 1만 여명이 쳐들어오는 왜군과 맞서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남원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접반사 정기원 ㆍ 병사 이복남 ㆍ 방어사 오응정 등과 명군의 중군장 이신방 ㆍ 천총 장표 ㆍ 모승선 등 주민 6천여를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모두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다만 성이 함락되기 직전 전세가 불리함을 느낀 명나라 장수 양원은 50여 명의 심복 부하만을 거느리고 군졸로 변장하여 명나라로 달아났다고 전한다. 당시 남원은 천혜의 요새라로 할 수 있는 교룡산성(전라북도 기념물 제9호)이 있어 임진왜란 중에 이미 승병장 처영이 개축을 하는 등 전쟁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군 장수 양원이 평지에서 말 타고 싸우던 것만을 생각하여 교룡산성을 파괴하고 남원성을 개축하여 전쟁에 임하게 된 것이 가장 큰 패인이라 평가되고 있다( (사진 및 내용 출처 : 문화재청 공식 블로그).

34. 1597년 7월 25일 오전 8시) 경북 경주 약장현(約章縣) 안동(安東)`기장진(機張鎭)`주둔지

 아침부터 기장진(機張鎭) 주둔지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그간 주둔지를 방어해주던 목책(木柵)이 뽑혀져 불길 속으로 던져졌고, 기장진 군사들이 숙식하던 막사들이 차례대로 불길에 휩싸였다. 
 "왜놈들에게 단 한 개의 물자도 넘겨줄 수 없다! 남김없이 태워라!"
 기장진 철수를 지휘하는 이겸수(李謙受)는 속이 착잡했다. 거의 2여 년 동안 머물렀던 주둔지가 벌써 반절 이상 불길 속으로 사라져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쉬웠다. 다시금 왜군을 피해 물러서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도체찰사(四道體察使) 이원익(李元翼)과 경상도방어사(慶尙道防禦使) 고언백(高彦伯)의 빠른 판단 덕분에 철수가 비교적 용이하기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물론 그러한 빠른 판단에는 지난 임진년 전란을 통해서 얻은 교훈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 7월 15일 칠천량(漆川梁) 해전에서 신임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원균(元均)이 이끌던 조선수군연합함대가 왜군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수군이 사라진 이상, 이제 왜군의 북상을 막을 수단이 조선에는 없다.`
 이겸수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던져 져 타오르고 있는 목책의 나무기둥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칠천량 해상에서 왜군의 공격을 받고 불타오르는 수군 전선(戰船)이 연상된 때문이다. 실로 허무한 패배가 아닐 수 없었다. 거의 130여척에 달하는 판옥선(板屋船)과 2만에 가까운 수군들이 한 순간에 없어진 것이다. 이겸수는 새삼 이순신이라는 사내에 대해 경외심이 들었다.  설마 장수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던 조선 수군이 쉽사리 무력해질까하는 의문이 결국 자신의 오만에 가까운 희망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탓이다. 
 `곧 가등청정이 움직일 터인데…`
 이겸수는 거의 절정에 다다른 수미터 높이의 불길을 등지고 울산 쪽을 바라봤다. 첩첩이 가로 막힌 산 너머에는 가등청정(加?淸正)이 거느린 수만의 왜군들이 본격적인 북상을 준비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때마침 울산 쪽에 퍼져 있던 시커먼 구름 띠가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을 본 이겸수는 하늘이 마치 자신에게 어서 도망치라는 경고를 하는 것이라 느꼈다. 
 `밀려드는 구름을 막을 수 없듯, 앞으로 밀어닥칠 수만의 왜군을 막을 힘이 내게 없다는 것을 하늘도 아는 것이겠지.`
 이겸수는 안타까웠다. 자신과 자신이 조련시킨 군사의 용맹은 분명 하늘을 찌를 듯 했으나, 그 용맹의 수가 너무도 적었다. 이대로 수만의 왜군 적진을 향해 돌진해야봐야 개죽음 이상의 값어치를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이겸수는 스스로에게 지금은 용맹보다 앞으로 전개될 전황을 내다보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타일렀다. 
 그렇게 한참을 울산 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와중에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겸수 곧장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니 기장진 이방인 군관 차현진이 한 무리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차 군관은 지난 늦은 오후에 주변 지역을 비우는 작업인 이른바 청야(淸野)를 위해 군사를 이끌고 출동했다가 돌아오던 길이다.
 "사또! 명하신 청야를 완료하였습니다."
 차 군관이 이겸수를 향해 말했다. 
 "수고하였네. 남아 있던 백성들은 모두 피신 시켰는가?"
 "네, 사또. 소관이 직접 마을을 돌며 하나 하나 확인하였습니다."
 "혹 몰래 숨어 있던 백성들은 없던가?"
 "몇몇 있었사옵니다. 허나 소관이 설득하여 모두 피난시켰사옵니다."
 "그리하면 됐네. 논밭의 상황은 어떠하던가?"
 "사또께서 명하신 대로 논의 벼나 밭에 남아 있던 작물 모두 거둬진 상태였사옵니다."
 "다행일세. 왜놈들이 여길 차지하는 것도 억울한 판에 우리 손으로 키운 쌀로 왜놈들의 배를 불리 수는 없는 노릇이지."
 충격적인 칠천량 해전의 결과를 전해들은 경상도방어사 고언백과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 성윤문(成允文)은 왜군의 북상을 예상하고 경주성 인근 지역에 대한 청야를 각 휘하 장수들에게 명했었다. 그 명에 따라 이겸수 또한 자신들 주둔지 부근의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논밭에 키워지고 있던 농산물을 수확케 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왜군들의 식량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조선군과 조선에 주둔 중인 명군들이 군량미 부족에 허덕이고 있듯, 조선군과 명군의 두 배에 달하는 왜군들 또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사실 왜군이 춘계(春季) 공세를 취하지 않은 이유 또한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의 논과 밭에서 작물이 익기를 기다린 때문이다. 본국에서 식량을 넉넉히 가져 오지 못한 왜군은 싫든 좋든 조선에서 군량미를 현지 조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봄철에 공격을 가하지 시작하면 불안감을 느낀 조선인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깊은 산속으로 달아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여름이 지난 8월에 공격하면 곡창지대에는 수확하지 못한 벼가 즐비할 터였고, 그것은 그곳을 장악한 왜군의 훌륭한 식량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대신 곡창지대를 빼앗긴 조선군과 명군으로서는 자신들의 군량미를 빼앗긴 형국이어서 크나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해가 중천에 다다랐을 무렵, 기장진 주둔지에 대한 철수 작업이 거의 완료되었다. 목책과 막사를 비롯한 각종 시설들이 모두 철거된 주둔지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작업이 완료됨에 따라 기장진에 소속된 군관과 군사들이 각자의 무기와 장비들을 챙겨들고 이겸수 곁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모두 수고하였다! 비록 오늘 우리의 땀과 노력이 깃든 이곳을 우리 손으로 불사르기는 하였으나, 결코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청야수성에 따른 작전일 뿐이다. 어찌 저 잔악무도한 왜군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겠느냐! 내 약속할 것이다! 다음 우리 기장진 깃발이 나부낄 곳은 반드시 기장현청이 될 것이다! 그때를 위해 혼신을 힘을 다해 싸워야할 것이다! 알겠느냐!"
 "와아!"
 이겸수가 자신 앞에 모인 400여명에 달하는 기장진 군사들을 향해 외쳤고, 그에 화답하듯 기장진 군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함성을 내지르며 환호했다. 이겸수는 그런 기장진 군사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비록 승리할 수 없을지라도 결코 왜군에게 항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35. 1597년 7월 28일 오후 14시 경상우도(慶尙右道) 사천현(泗川縣) 선진리(船津里) 왜성(倭城)

 전날 과음으로 인해 오후 늦게 자리에서 일어난 소서행장(小西行長)은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서 간단하게 요기를 한 다음 투구와 갑옷을 입고 침소를 나섰다. 
 "주군! 괜찮습니까?"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종의지(宗義智)가 침소를 나서는 소서행장을 맞았다. 
 "전날 음주가 과했던 모양이다."
 지난 7월 15일 있었던 칠천량 해전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조선 수군을 격파한 뒤부터 이어지고 있는 승전 축하 술자리 탓에 소서행장의 얼굴은 몹시 수척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 미소만큼은 선연했다. 
 "서두르시지요. 와키자카 장군과 도도 장군이 아까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좀 더 일찍 깨우지 그랬느냐!"
 "죄송합니다. 두 장군께서 깨우지 말라고 하셔서요."
 "그래도 예의가 아니지 않느냐! 어서 가자."
 이번 칠천량 해전을 승리로 이끈 왜수군 장수인 등당호고(藤堂虎高)와 협판안치(脇坂安治)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소서행장은 화를 내며 회의장소로 가기 위해서 서둘렀다.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성내에 마련된 별실 문을 열고 들어선 소서행장이 미리 기다리고 있던 등당호고와 협판안치를 향해 대뜸 사과부터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도 예 와서 기다린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등단호고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난 또 어제 술자리에서 나만 과음한 줄 알았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소장들 또한 아침에 겨우 눈을 뜨고 나왔습니다."
 협판안치가 너스레를 떨며 소서행장의 말을 받아 주었다. 
 "자, 일단 앉읍시다."
 소서행장은 등단호고와 협판안치를 향해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세 사람이 의자에 앉기 무섭게 차가 내어져 나왔다. 소서행장이 직접 차 사발을 들고 두 사람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은은한 차향이 주변으로 퍼졌고, 이내 세삼은 차와 찻잔을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눴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소서행장이 찻잔 속의 차를 모두 입속에다 털어 넣은 다음, 잔을 탁자 위에다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지요. 승전 술자리도 이제 지겹습니다."
 일찌감치 차를 모두 마시고 찻잔을 요모조모 살피던 등단호고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와키자카 장군, 수군은 상황은 어떻습니까?"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협판안치가 자신 있다는 투로 말했다. 사실 오늘 회의 목적은 내일부터 진행될 남원성(南原城) 공략을 위한 세부 전략 마련에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번 남원성 공략은 전주성 공략을 위한 전초전입니다. 따라서 우리 군의 희생을 최소화 시켜야 합니다."
 "고니시 장군, 뭘 그리 걱정합니까? 현재 남원성을 지키는 병력이라고 해봐야 조선군 1천에 명군 3천 도합 4천이 전부입니다. 우리 군의 10분의 1도 되질 않습니다."
 등단호고가 소서행장이 남원성 공략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도도 장군, 물론 그렇습니다. 허나 지난 임진년 때 진주성 전투를 반면교사 삼아야합니다."
 소서행장은 이번 남원성 전투가 자칫 진주성 1차 전투와 같은 양상으로 전개될까 은근히 걱정하고 있던 차였다. 당시 진주성 1차 전투에서 왜군은 압도적인 병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어이없이 패전하고 말았다. 더불어 막대한 병력 손실을 입어 사실상 왜군의 서진이 좌절되기도 했었다. 소서행장은 그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남원성 공략에 신중을 기하고 있던 차였다.  
 "고니시 장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비록 우리가 지난 칠천량 해전에서 대승을 거둬 우리 군의 사기가 충천해 있다고 하지만 남원성을 섣불리 건드릴 수는 없지요. 어디까지나 우리의 목표는 전주성 공략과 전라도 지역 점령입니다. 솔직히 그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현재의 군사의 수나 군량미로는 빠듯한 실정입니다. 거기다가 앞으로 명나라에서 파병되어 올 명군을 대비한다면 더욱 그렇지요. 해서 이번 남원성 전투는 우리 군의 압승으로 끝이 나야합니다."
 협판안치가 소서행장의 의견을 거들고 나섰다. 다소 무안해진 등단호고가 헛기침을 하며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 위에다 내려놓았다. 
 "두 분 장군의 말씀 모두 옳습니다. 허나 남원성을 지휘하고 있는 명군의 부총병 양원(楊元)은 전략에 그다지 밝지 못한 자이옵니다. 두 장군께서도 아시다시피 남원성은 평지에 세워진 성입니다. 따라서 수성에 매우 불리하지요. 때문에 소장의 생각으로는 남원성은 어렵지 않게 우리 수중으로 들어올 겝니다."
 등단호고가 소서행장과 협판안치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기는 하지요. 만약 양원 그 자가 싸움에 능한 장수라면 어찌 인근 교룡산성에 들어가 수성전을 펼칠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수성에 유리한 교룡산성이 아닌 남원성을 지키고자 하는 것을 보면 전쟁에는 아둔한 자가 분명하지요." 왜군 장수 중에서 지략에 능했던 등단호고는 남원성 방어의 책임자인 명군의 양원이 교룡산성을 포기하고 남원성에서 수성하려 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사실 남원성은 인근 교룡산성보다 공략하기가 매우 쉬운 평성이었다. 그런 점 때문에 등단호고는 남원성 전투의 낙승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김 규 봉<소설가/시나리오 작가/양산문인협회 회원/양산문화원 회원/가락양산역사문화연구소 상임연구원>

  "좋습니다. 내일쯤이면 계획했던 공성병기들이 마련되고, 병력 집결도 마칠 예정입니다. 내일 모레 새벽에 남원성을 향해 출발하려 합니다.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소서행장의 말에 등단호고와 협판안치 두 장군이 동의했다. 
 "남원성 공략은 이번 전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사히 남원성만 취할 수 있다면 전라도가 우리 수중으로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니 두 장군께서도 각자 부대로 돌아가 만반의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장군."

 

김규봉  webmaster@yang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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